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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장계리 향토전시관 청석교(安內面 長溪里 鄕土展示館 靑石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내면 장계리 향토전시관 청석교(安內面 長溪里 鄕土展示館 靑石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3. 23. 15:06

 

옥천군 향토자료관 야외에 설치되여있는 청석교(靑石橋)입니다.

이 다리는 660년 신라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다리의 구조는 하천 바닥에다 크고 긴돌을 눕혀 놓고, 그 위에다 사각형의 돌기둥을 두 개씩 세운 다음 얹침 돌을 지르고 그 위에다 넓고 긴 돌을 얹어 놓아 다리를 만들었는데, 다리의 길이는 6.9m, 폭 2.2m, 높이 1.75m로서 옛날 서울을 오르내릴 때 많은 사람이 이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다리가 있었던 증약은 찰방역이 있던 곳으로 사람의 왕래가 많았을 것으로 보이며 이런 연유로 인하여 강감찬 장군의 일화는 이지역 주민들의 구전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청석교라고 쓰인 돌이 서있습니다.

 

즉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신라땅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신라의 수도인 경주는 천년 도읍지로서의 긍지와 신라인의 자부심 들이 뿌리 박혀 있어 고려에 순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윤(현재의 시장)을 보내면 통치를 못하고 밀려나가기만 하므로, 지용을 겸비한 명장 강감찬을 경주부윤으로 보임하게 되어 이곳에서 하루저녁 쉬게 되었는데, 이곳에 모기가 너무 많아 백성들이 심히 괴로움을 당하고 있음을 보고 "아무리 미물이라 하더라도 백성을 괴롭히는 죄는 용서할 수 없다. 즉시 물러가지 않으면 멸종을 면치 못하리라"하고 호령을 하니 모든 모기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며, 지금도 이곳에는 모기가 적다고 한다. 그리고 경주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강감찬 장군의 신통력을 믿고 따라 훌륭하게 통치를 하였다고 전한다.
옥천군에서는 2000년 옥천향토사료관으로 이전 복원 하였다.

 

 

 

 

이 다리는 신라 문무왕때인 660년경에 만든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본래는 군북면 증약리 경부선 철도 자리에 있었으나 철도공사로 인하여 증약마을 입구로 옮겼으며, 그 후 수해로 인하여 2001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 다리가 있던 증약마을은 찰방역이 있었던 곳으로 왕래가 빈번하였다.

이 돌다리는 높이 1.75m, 너비 2.2m, 길이 9.83m이며, 다리의 구조는 양쪽 개울가를 돌로 쌓고 개울 바닥에 넓직한 돌을 깔은 다음 사각형의 돌기둥을 2개씩 세워 그 위에 넓고 긴 널돌을 얹어 길바닥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