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원면 가양리 수락영당(米院面 佳陽里 水落影堂)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미원면 가양리 수락영당(米院面 佳陽里 水落影堂)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4. 26. 07:38

몇 번이고 찾은곳이지만 참 좋은곳이다. 산속 깊이 자리잡은 이 곳 수락골도 집이 자꾸만 생기는것 같다.

골짜기로 향하는 좌 우로 전원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수락골을 흐르는 불사천가로도 인공의 조형물이 쌓이고 자꾸만 자연의 흐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느티나무밑에 의자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지고 그 위로 바람소리 산새소리가 켜켜히 쌓이고 있다.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1287년(충렬왕 13)에 출생하여 1367년(공민왕 16)까지 활동한 인물로 당시 고려사회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이라는 고려 최고의 관직까지 올랐으며, 그가 남긴 수많은 글과 더불어 해박한 식견은 현재는 물론이고, 당시 사회에서 이미 존경받고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100여 년간에 걸친 무인(武人) 지배로 인한 후유증과 함께 원(元)의 정치적 간섭을 받던 시련의 시기였다. 이제현은 이러한 시기에 수차에 걸쳐서 원을 왕래하기도 하고, 표문(表文)을 올려 원의 부당한 내정간섭을 비판하면서 고려의 주권을 보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 인물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홀로 공부하여 고루하였고 도(道)를 들은 것은 자연히 늦었었다. 불행은 모두가 자신이 만든 것, 어찌하여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가. 백성에게 덕 보인 것 무엇이기에 네 번이나 대신이 되었단 말이냐. 요행으로 이렇게 된 것이기에 다만 모든 비난 불러들였다.'-<익재난고 제 9권 하>

이어지는 내용은 '못난 내 얼굴 그려 두면 무엇하나. 너의 후손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한 번 쳐다보고 세 번씩 생각하여 그런 불행 있을까 경계하여서 아침마다 저녁마다 노력하여라. 만일 그런 요행 바라지 않는다면 행여나 불행을 면하게 되리'라고 썼다. 당시로는 꽤나 장수를 한(81살) 이제현은 공민왕의 왕비 노국공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자신의 딸을 왕비로 삼게 했다. 그가 바로 혜비(惠妃 )다.
그녀는 공민왕이 살해당하자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됐다. 한편 이제현은 홍건적의 침입 때는 공민왕을 수행해 우리고장 청주에서 5개월 가량 머물기도 했다. 이때 지금의 중앙공원 망선루와 무심천변 공북루가 공간적인 배경으로 등장한다.

 

 

미원면 가양리 수락영당(米院面 佳陽里 水落影堂) (tistory.com)

 

미원면 가양리 수락영당(米院面 佳陽里 水落影堂)

수락영당은 미원면 가양리 45-6번지에 있습니다. 고종 광무2년(1898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수락영당은 고종 광무2년(1898년)에 진천 양호사에 봉안됐던 계림부원군 문충공 문하시중 익재(益齋) 이제

king6113.tistory.com

 

하마비와 함께 홍살문이 다시 세워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