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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천면 화양동 암서재(靑川面 華陽洞 岩棲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천면 화양동 암서재(靑川面 華陽洞 岩棲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9. 6. 07:51

 

溪邊石崖闢 시냇가에 바위벼랑 열렸으니

作室於其間 그 사이에 서실을 지었노라

靜坐尋經訓 조용히 앉아 경전의 가르침 찾아

分寸欲躋攀 분촌이라도 얻으려고 노력하고파.

「화양동 바위 위의 정사에서 읊다(華陽洞巖上精舍吟)」

 

 

流水桃花在 흐르는 물에 복숭아꽃 뜨고

桑麻雨露多 뽕나무 삼나무에 우로가 많으니

俗傳無量號 무량이라 전하는 마을 이름

知是武陵訛 무릉도원의 와전인가 하노라.

「무량촌 사람에게 써서 주다(書贈無量村人)」

 

 

화양구곡 중 제 4곡 金沙潭 (금사담)

맑은 물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고 하여 지어졌고 1666 송시열이 바위 위에 암서재 지어놓고 학문을 연마 하고 후진양성을 했다고 한다.암서재 아래 바위에는 ‘명나라 황제가 사는 곳의 구름은 끊어지고, 주자가 살던 무이산은 비었다.’라는 뜻의 ‘蒼梧雲斷 武夷山空(창오운단 무이산공)’이라는 문구를 새겨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하자는 뜻을 밝혔다

 

금사담 가의 바위벽에는 ‘金沙潭’이라는 이름을 비롯, ‘忠孝節義’(충효절의)니 ‘蒼梧雲斷 武夷山空’(창오운단 무이산공) 등 여러 글자가 새겨져 있다.창오산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산이고 무이산은 주자가 살던 산이다.‘창오산은 구름이 끊어지고 무이산은 비어 있다’고 한 것은 명이 스러지고 ‘오랑캐’ 청이 섰던 상황을 송시열의 입장에서 절박하게 표현한 것이다.금사담뿐 아니라 구곡 곳곳에 새겨진 그 이름들은 송시열의 문인으로서 영조 때 정승을 지내며 노론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던 민진원의 글씨이다.忠孝節義 (충효절의) 네 글자는 명나라 태조의 글씨이며 다른 글자는 송시열의 것이라 전해진다.

 

 

 

암서재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선생이 정치를 그만 두고 은거할 때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화양구곡(華陽九曲) 제4곡 금사담(金沙潭) 물가의 큰 반석가에 있는 서재로,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암서재(岩棲齋)는 대지 약 65m2 정도에 목조기와로 2칸은 방이고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 안에는 현판 5점이 걸려 있다. 앞에는 암반 사이에 일각문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후손들이 수리하였고, 1970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암서재기(岩棲齋記)에 '우암선생어병오년간축정사어계남(尤庵先生於丙午年間築精舍於溪南)'이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666년(현종 7) 8월 암서재(岩棲齋)를 짓고 이곳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암서재기(岩棲齋記)의 글씨는 문인 권상하(權尙夏)가 쓴 것이다. 화양구곡(華陽九曲) 곳곳에는 지금도 <비례부동(非禮不動)> 등 송시열(宋時烈)의 필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화양서원의 터도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