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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면 박해성송덕비(嚴政面 朴海成頌德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엄정면 박해성송덕비(嚴政面 朴海成頌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4. 26. 13:23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노변공원에 있는 박해성의 공덕을 기리는 비.

[건립경위]
박해성(朴海成)목계 나루터에서 선착장으로 가려면 샛강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고 사재를 털어 돌다리를 가설하였고, 이에 1940년에 박해성가설석교비(朴海成架設石橋碑)가 세워졌다. 그러다 나루터가 제 구실을 못하면서 제방 밑에 비가 방치되자 노변공원으로 이전하고 그 앞쪽에 새로운 송덕비를 세워 덕을 기리게 되었다.

[형태]
1940년 세워진 석교비는 앞면 26.5×69㎝의 크기로, 비좌원수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새로운 송덕비는 비신 121×41.5×47㎝, 지붕돌 70×46×33㎝ 크기의 비좌개석 형태로 건립되었다.

[금석문]
석교비에는 6×5.5㎝의 해서체로 ‘박해성씨가설석교을축십일월(朴海成氏架設石橋乙丑十一月)’이라 단순하게 음기되었고, 1998년에 세운 송덕비에는 9×105㎝ 크기로 ‘밀양박공해성송덕비(密陽朴公海成頌德碑)’라 음기되었다.

[현황]
엄정면 목계리에는 두 군데의 노변공원이 있는데, 하나는 강변 쪽의 노변공원으로 신경림 시비를 비롯하여 목계 나루터비·나루터 안내비·김영중 시비 등이 있고, 또 다른 노변공원은 부흥산 절벽 밑 도로변에 세운 공원으로 목계 줄다리기·별신제 유래비와 박해영 송덕비 등이 있다. 박해성 송덕비는 부흥산 밑 부분의 공원에 위치하고 있어 관리가 잘 되고 있으나, 석교비는 절벽 쪽으로 깊숙하게 위치하고 있어 거의 잊혀진 상태이다

 

송덕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公)은 해성(海成)이시며 밀양박씨(密陽朴氏) 간의공(諫議公) 24세손(二十四世孫)이요 치근씨(致根氏)의 장자(長子)이시다. 1862년(一八六二年) 목계(牧溪)에서 탄생(誕生)하시어 인품(人稟)이 총명준수(聰明俊秀)하시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능해통달(能解通達)하시고 온후자상(溫厚仔詳)한 심성(心性)으로 인보상조(隣保相助)와 위민사업(爲民事業)에 불석심혈(不惜心血)하시어 1904년(一九○四年) 헌성사재(獻誠私財)로 샛강 깊은 물에 석축작교(石築作橋)하여 주민왕래에 제하공덕(濟河功德)을 크게 세우시고 1923년(一九二三年) 졸(卒)하시었다. 당시의 송덕비(頌德碑)가 강변(江邊)에 위치(位置)해 원세풍우(遠歲風雨) 속에 퇴패멸자(頹敗滅字)됨을 강개불무(慷慨不無)하여 주민일동(住民 一同)이 구수의논(鳩首議論)으로 복원건립(復元建立)하고 공(公)의 덕업(德業)을 추모불망(追慕不忘)함.

목계주민일동(牧溪 洞民 一同)

서기 1988년 9월 13일(西紀 一九八八年 九月 十三日)’


 

[박해성(朴海成)1862-1923]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사업가.
[활동사항]
박해성밀양박씨 간의공 24세손으로 1862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박치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서삼경을 통달하였고, 자상한 인품과 온후한 심성으로 마을과 지역주민을 위한 일에 항상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04년 당시 엄정면 목계나루터에서 선착장을 가려면 샛강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마을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재를 털어 샛강에 돌다리를 건립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해성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40년 나루터 자리에 송덕비를 세웠으나 나루터가 없어지면서 관리가 어렵게 되고 비바람에 많이 훼손되어 목계 노변공원으로 이전하였다. 1988년 밀양박공해성송덕비(密陽朴公海成頌德碑)를 새로이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