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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문촌리 칠원윤씨효열각(甘谷面 文村里 漆原尹氏孝烈閣) 본문

윤기손, 윤기진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효자문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목조기와 맞배집이며, 형제의 효자문과 청풍김씨 열녀문이 함께있다. 편액에는 형인 기손은 ‘효자 절충장군겸지중추부사윤기손지문 상지이십일년 신사 이월 일 명정(孝子 折衝將軍兼知中樞府事尹起巽之門 上之二十一年 辛巳 二月 日 命旌)’이라 되어 있고, 동생 기진은 ‘효자 학생윤기진지문 상지이십일년 신사 이월 일 명정(孝子 學生尹起震之門 上之二十一年 辛巳二月 日 命旌)’이라 되어 있으며, 청풍김씨 열녀문의 편액은 ‘열녀 고학생윤득성처 유인청풍김씨지문 상지이십오년 을유십일월 일 명정(烈女 故學生尹得聖妻 儒人淸風金氏之門 上之二十五年 乙酉十一月 日 命旌)’이라 되어 있다.
조선 후기 정조대에 감곡면 문촌리에 살던 윤기손과 윤기진 형제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홀어머니 원씨가 병환으로 자리에 드러눕자 형제는 밤낮없이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하자 형제는 꿩을 잡으러 산중을 헤맸으나 한여름에 맨손으로 꿩을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잡을 수가 없자, 형제는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하늘에 백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형제의 지극한 효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독수리가 꿩 한 마리를 형제 앞에 떨어뜨리고 날아갔다. 형제는 하늘에 감사하며 꿩을 고아서 어머니께 드렸는데 거짓말같이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 그 후 어머니 원씨가 또 병환이 들었다. 의원은 이번에는 아무래도 소생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형제는 어머니 대신 죽을 각오를 하고 왼손가락을 모두 단지(斷指)하여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렸다. 그리하여 다행히 어머니는 소생하였으나 동생 윤기진은 열아홉의 나이에 그만 죽고 말았다. 윤기진의 아내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따라 죽으려다가 어린 자식을 양육하고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할 결심으로 살아서, 훗날 근동에서는 다시없는 효부로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전한다.

「윤기손·기진 형제의 효」는 특정한 인물의 특별한 효행담이라기보다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일반적 효행담으로 볼 수 있다. 광포적 분포를 보이는 효행담은 대부분 부모가 원하는 난제를 효심으로 해결하거나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부모의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보통의 효행담에서는 병든 부모를 위해 겨울에 산딸기를 따거나 잉어를 잡는데 「윤기손·기진 형제의 효」에서는 여름에 꿩을 잡는다. 또 단지(斷指)의 경우 형제가 왼손가락을 모두 자르는 내용으로 자세하게 구체화되어 전해 온다. 여기에 윤기진의 아내 이야기가 덧붙여져 유교의 근본 이념인 효열(孝烈)을 강조하고 있다. [감곡면지]


윤득성(尹得聖)의 처 김씨는 19세에 남편이 질병을 얻어 위독하니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대신 죽기를 빌었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끝내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상을 마치고 음독자살하려다가 잡안사람에게 발견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 후 유복동(遺腹童)을 해산하니 여아(女兒)였다.해산 후 음식을 먹지 않고 2일 만에 자결했다.영조(英祖)때 열녀(烈女)로 포상되고 정조(正祖)때 열녀 정문을 세우도록 했다.정문 현판에는 “열녀 고학생윤득성처유인청풍김씨지문 상지이십오년을유십일월 일 명정(烈女 故學生尹得聖妻孺人淸風金氏之門 上之二十五年乙酉十日月 日 命旌”이라고 하였다.

이 효자·열녀문은 두 형제의 효자문과 청풍김씨의 열녀문까지 함께 있어 3간이었으나, 불에 타 지금은 2간만이 남아있던 것을 1985년 6월 새로이 지어 단장하고 철책을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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