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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장계리옥천청석교(安內面 長溪里沃川靑石橋) 본문
이 다리는 신라 문무왕때인 660년경에 만든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본래는 군북면 증약리 경부선 철도 자리에 있었으나 철도공사로 인하여 증약마을 입구로 옮겼으며, 그 후 수해로 인하여 2001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 다리가 있던 증약마을은 찰방역이 있었던 곳으로 왕래가 빈번하였다.
이 돌다리는 높이 1.75m, 너비 2.2m, 길이 9.83m이며, 다리의 구조는 양쪽 개울가를 돌로 쌓고 개울 바닥에 넓직한 돌을 깔은 다음 사각형의 돌기둥을 2개씩 세워 그 위에 넓고 긴 널돌을 얹어 길바닥을 만들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21호로 지정 관리되고있다
장계리는 원래 군북면(郡北面)에 소속되어 있었고 장사리(長沙里)라 불리던 마을이었으나 장사리와 욱계리(旭溪里)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739년 기록이나 1891년 기록에 보면 장사리로 60호가 살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을 일제 조정하면서 장사리와 욱계를 합하여 장계리라 불러 오늘에 이른다. 2007년말 현재 61호 121명이 거주하고 있다.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그 관할구역이 군북면에서 안내면으로 소속되었다.
장계리라 부르게 된 것은 두 마을을 합하면서 장사리의 장자와 욱계의 계자를 한자씩 합하여 장계리라 하였다.
장사리는 “진모래”를 한자화한 것인데 “진”을 긴장(長) “모래”를 모래사(沙)로 써서 장사리(長沙里)로 하였으나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되었다. 옛말로 “진”은 긴 것이 되고 “모래”는 모랭이란 말로서 “모랭이가 길다”는 뜻이 되며 이곳의 지역으로 보아 강의 모롱이가 길기 때문에 “긴모롱이→진모랭이→진모래”로 음운변화가 된 것이다.
욱계는 아주 옛날에 생긴 마을이 아니고 한자가 생활화한 후에 생긴 마을로서 마을이 산중턱에 있고(웃계), 마을 가운데 작은 하천이 있으나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고 그 외에는 물이 흐르지 않아 바닥이 마른 내(川)이었기 때문에 햇빛에 돌이 반짝이며 빛이 난다하여 욱계라 이름지었다 한다.
장계리의 자연마을로는 진모래, 욱계, 주막말, 개경주, 논골 등이 있었으나 대청댐 수몰로 인하여 진모래, 주막말, 개경주 등이 물에 잠겨 없어지고 인근 마을에 조금씩 옮겨와 살고 있다.
장계리에는 옥천향토전시관과 대청비치랜드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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