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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3/04/26 (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원면 가양리 수락골은 경주이씨들과 관련이 많은 곳입니다. 수락영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경주이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 효자 열녀들의 비석이 있습니다. 또한 서계 이득윤의 묘와 함께 창평공 이공린의 묘역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느티나무는 서계 이득윤이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느티나무는 청주시 지정번호 제 40호로 1982년 11월 11일에 지정되었습니다.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지정당시 나무의 수령은 280년 높이는 18미터 둘레는 4.5미터이며 소재지는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가양리 144번지 이며 수락영당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나무밑에는 사패비와 함께 수락괴정원이라 각자된 자연암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물이 흐르는 개울가 옆에는 농금암이라는 각자 그리고 민가뒤에는 상읍암이라는 각자가 있습니다. ..

괴산읍 검승리에 자리하고 있는 애한정 앞에 자리하고 있는 동몽선습비입니다. 박세무(1487 ~ 1554)는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 저서로는 《동몽선습》이 있습니다. 사관 때 김안로의 미움을 사게 되어 마전군수로 좌천되었으며, 선정을 베풀었다. 승문원참교, 안변부사·군자감정 등을 역임했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글씨를 잘 썼다 박세무(朴世茂)는 본관 함양. 자 경번(景蕃). 호 소요당(消遙堂). 1516년(중종 1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3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갔다. 헌납(獻納)을 거쳐, 사관(史官)이 되었을 때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사게 되어 1539년 마전군수(麻田郡守)로 좌천되었으며, 선정을 베풀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1544년 승문원참교(參校)를 지내고, ..

괴산읍 검승리에 있는 애한정입니다. 애한정 주위로는 동몽선습비와 효자비와 농사역사박물관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괴강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1978년에 도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애한정은 임진왜란 때 백의(白衣)로 왕을 의주까지 호가(扈駕)하여 그 공으로 별좌(別座)에 올랐다가 광해군 때 낙향한 박지겸(朴知謙)이 광해군 6년(1614)에 지은 학재(學齋)이다. 이 후 현종(顯宗) 15년(1674)에 그의 손자인 박정준(朴廷俊)이 군수 황세구(黃世耉)의 도움을 받아 새로 짓고, 숙종 38년(1712), 숙종 44년(1718), 영조 51년(1775), 그리고 1979년에 중수하였다. 초기의 건물은 아래쪽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작은 건물이었던 듯한데, 후대에 중수하면서 위쪽에 ..

몇 번이고 찾은곳이지만 참 좋은곳이다. 산속 깊이 자리잡은 이 곳 수락골도 집이 자꾸만 생기는것 같다. 골짜기로 향하는 좌 우로 전원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수락골을 흐르는 불사천가로도 인공의 조형물이 쌓이고 자꾸만 자연의 흐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느티나무밑에 의자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지고 그 위로 바람소리 산새소리가 켜켜히 쌓이고 있다.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1287년(충렬왕 13)에 출생하여 1367년(공민왕 16)까지 활동한 인물로 당시 고려사회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이라는 고려 최고의 관직까지 올랐으며, 그가 남긴 수많은 글과 더불어 해박한 식견은 현재는 물론이고, 당시 사회에서 이미 존경받고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100여 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