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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국방방곡곡/강릉(江陵) (3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조선조 강릉부사를 지낸 한효주의 선정비입니다. 비석의 규격은 높이 159 너비 64 두께24.5센티이며 비석의 전면에 부사한효주선정비(府使韓孝友善政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글자에 훼손이 있습니다. 한효우는 1531(중종 2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희중(希仲). 한숙(韓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세침(韓世琛)이고, 아버지는 통례 한원(韓垣)이며, 어머니는 이성수(尼城守) 이존관(李存官)의 딸이다. 1555년(명종 10)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55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2년 중종의 능을 옮길 당시 재궁시위집사로 임명되었고, 다음해 사서를 지냈다. 1564년에는 지평, 다음해 헌납, 1566년 병조정랑에..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일제강점기 진사 최재린유혜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 진사최공재린유혜불망비(進士崔公在隣有惠不忘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최재린은 일제강점기시절의 인물로 지역주민들을 위하여 힘든시기에 구휼활동등에 앞장 섰으며 1925년 강릉전기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지역경제에도 앞장 서는 등 지역의 선구자적 인물입니다. 강릉 전기 주식회사 - 디지털강릉문화대전 (grandculture.net) 강릉 전기 주식회사 - 디지털강릉문화대전 [정의] 일제 강점기 때 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전기 회사. [설립목적] 강릉 지역에 발전소를 건립하고 전기를 공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설립 경위] 강릉 지방은 지형상 동서를 가로막고 gangneung.grandculture.net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강릉부사 이응우의 선정비입니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석의 크기는 가로 46.2 세로116 두께13센티이며 비석의 전면에는 부사이공응우선정비(府使 李公膺愚善政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2839책 (탈초본 132책) 고종 14년 6월 20일 갑진 23/42 기사 1877년 光緖(淸/德宗) 3년 ○ 李萬稙以吏批言啓曰, 江陵大都護府使, 今當差出, 而本府以關東雄邑, 物衆地大, 素稱難治, 不可不擇差, 同道及他道有聲績已準限未準朔守令, 竝擬, 何如? 傳曰, 允。 再度, 洪輔燮爲司饔直長, 崔翰周爲司宰直長, 南廷莢爲北部令, 徐相祖爲古阜郡守, 李膺愚爲江陵府使。
강릉시립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조 고종대의 강릉부사 이서영의 선정비로서 비석의 전면에는 부사이공서영선정비(府使李公瑞永善政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돌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석의 크기는 가로 40.5 세로 108, 두께15.5센티입니다. 이서영은 덕수인으로 1855년 철종8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이민성이다. 선정비는 1890년인 경인년 팔월에 건립되었다. 승정원일기 2977책 (탈초본 136책) 고종 25년 9월 22일 경오 35/53 기사 1888년 光緖(淸/德宗) 14년 ○ 有政。 吏批, 判書趙秉世進, 參判趙榮夏進, 參議李鎬喆進, 左副承旨金昇圭進。 以閔泳煥·韓章錫爲賓客, 尹榮信爲大司憲, 金稷鉉爲大司諫, 宋淳鐸爲副修撰, 趙定熙爲同敦寧, 金丙基爲兵曹參知, 鄭範朝爲禮賓提調, 李建弘爲孝陵參奉,..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엘 가면 조금 특이한 비석을 볼수가 있습니다. 신분제도가 확실했던 조선조시절 주인을 위해 몸을 바치고 열심을 낸 노비의 비석입니다. 전국적으로 노비들의 비석은 희소성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노비들의 비석은 가문을 중시했던 그 시절의 자신들의 가문을 빛내기 위한 도구(?)로 쓰인것도 있겠지만은 삐딱선으로 보는 눈길보다는 열심을 냈던 그 시절의 한펀 일겁니다. 문리동은 관노였으니 그 범주에서는 벗어날수 있겠습니다. 조선 중기의 충노(忠奴)였던 문리동(文里同)의 비석입니다. 문리동은 관노로서 임진왜란 당시 강릉부사 이광준(李光俊)을 모시고 전란을 피하여 헤매다가 양식이 떨어지자 흩어진 나락을 주워 연명하게 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정성을 다하여 부사를 섬겼다. 주민들이 충성을 다하여 주인..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신복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년)에 범일국사가 처음 세웠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을 향하여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보살상을 표현하였는데, 왼쪽 다리를 세우고 오른쪽 다리를 꿇어 앉은 자세를 하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원통형의 높다란 관(冠)을 쓰고 있는 얼굴은 풍만한데다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어 복스럽게 보인다. 관 밑으로 드러난 머리카락은 어깨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양 어깨에서부터 걸쳐 내져진 옷자락은 몸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보살상의 사실성을 더해준다. 팔찌, 목걸이, 옷주름은 굵은 띠처럼 묘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둥글고 둔중한 조각수법을 보인다. 이러한 자세나 조각 솜씨는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