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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립박물관 충노 문리동비석(江陵市立博物館 忠奴 文里同碑石) 본문

전국방방곡곡/강릉(江陵)

강릉시립박물관 충노 문리동비석(江陵市立博物館 忠奴 文里同碑石)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8. 29. 12:04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엘 가면 조금 특이한 비석을 볼수가 있습니다. 신분제도가 확실했던 조선조시절 주인을 위해 몸을 바치고 열심을 낸 노비의 비석입니다. 전국적으로  노비들의 비석은 희소성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노비들의 비석은 가문을 중시했던 그 시절의 자신들의 가문을 빛내기 위한 도구(?)로 쓰인것도 있겠지만은 삐딱선으로 보는 눈길보다는 열심을 냈던 그 시절의 한펀 일겁니다. 문리동은 관노였으니 그 범주에서는 벗어날수 있겠습니다.

 

 

조선 중기의 충노(忠奴)였던 문리동(文里同)의 비석입니다.

문리동은 관노로서 임진왜란 당시 강릉부사 이광준(李光俊)을 모시고 전란을 피하여 헤매다가 양식이 떨어지자 흩어진 나락을 주워 연명하게 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정성을 다하여 부사를 섬겼다.

주민들이 충성을 다하여 주인을 섬긴 문리동의 행실을 갸륵히 여겨 비석을 세웠다.

현재 강원도 강릉시 성내동에 있었던 명주군청 안에 있던 비석을 1954년에 강원도 강릉시 남문동 강릉의료원 앞 남대천 제방으로 옮겼다. 그 후 1986년 다시 경포대 서쪽으로 옮겼다가 1992년 강릉시립박물관 개관 시 박물관 경내로 옮겼다.

받침돌 위에 너비 50㎝, 두께 17㎝, 높이 120㎝의 몸돌을 세웠다.

비석 제목은 중앙에 ‘충노문리동지려(忠奴文里同之閭)’라고 되어 있으며, 제목 왼쪽에는 ‘왕왕용사(往往龍蛇) 신배부관(身陪府官) 절식다일(絶食多日) 철습산곡(掇拾山穀), 난기분복(亂起奔服) 포복공곡(匍匐空谷) 우하공급(于何供給)’라고 새겨 있다. 오른쪽에는 ‘봉이료기(奉以療飢) 이효위충(移孝爲忠) 지미행탁(地微行卓) 기위이안(旣危而安) 세신역난(世臣亦難) 독보금고(獨步今古) 영시불후(永示不朽)’라고 새겨져 있다.

현재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 옆에 두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관찰사 비석 2기, 부사 비석 2기, 찰방 비석 1기 옆에 약간 떨어져 서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충노 문리동 비석 [忠奴文里同碑石]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문인협회*강원지회 | 2021.<강릉 문학 > 29집 발표 -강릉 역사동화- <별이 된 충노 문리동>이정순 - Daum 카페

 

2021.<강릉 문학 > 29집 발표 -강릉 역사동화- <별이 된 충노 문리동>이정순

 2021. 강릉 문학 29집 발표 -강릉 역사동화                  별이 된 충노 문리동        

cafe.daum.net

 

 

비석은 (崇禎 戊辰年)숭정 무진년(1628년)에 강릉부사 이명준(江陵府使 李命俊)이 정문을 세웠으며 그후 40여년 후인 崇禎後숭정후 38년(1666년)에 개립(改立)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