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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강릉시립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조 고종대의 강릉부사 이서영의 선정비로서 비석의 전면에는 부사이공서영선정비(府使李公瑞永善政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돌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석의 크기는 가로 40.5 세로 108, 두께15.5센티입니다. 이서영은 덕수인으로 1855년 철종8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이민성이다. 선정비는 1890년인 경인년 팔월에 건립되었다. 승정원일기 2977책 (탈초본 136책) 고종 25년 9월 22일 경오 35/53 기사 1888년 光緖(淸/德宗) 14년 ○ 有政。 吏批, 判書趙秉世進, 參判趙榮夏進, 參議李鎬喆進, 左副承旨金昇圭進。 以閔泳煥·韓章錫爲賓客, 尹榮信爲大司憲, 金稷鉉爲大司諫, 宋淳鐸爲副修撰, 趙定熙爲同敦寧, 金丙基爲兵曹參知, 鄭範朝爲禮賓提調, 李建弘爲孝陵參奉,..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엘 가면 조금 특이한 비석을 볼수가 있습니다. 신분제도가 확실했던 조선조시절 주인을 위해 몸을 바치고 열심을 낸 노비의 비석입니다. 전국적으로 노비들의 비석은 희소성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노비들의 비석은 가문을 중시했던 그 시절의 자신들의 가문을 빛내기 위한 도구(?)로 쓰인것도 있겠지만은 삐딱선으로 보는 눈길보다는 열심을 냈던 그 시절의 한펀 일겁니다. 문리동은 관노였으니 그 범주에서는 벗어날수 있겠습니다. 조선 중기의 충노(忠奴)였던 문리동(文里同)의 비석입니다. 문리동은 관노로서 임진왜란 당시 강릉부사 이광준(李光俊)을 모시고 전란을 피하여 헤매다가 양식이 떨어지자 흩어진 나락을 주워 연명하게 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정성을 다하여 부사를 섬겼다. 주민들이 충성을 다하여 주인..

공산성 선정비중에 하나입니다.비석의 마모로 인하여 정확한 글자를 알수가 없습니다.겸순찰사****선정비(兼巡察使****善政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공산성 입구에 있는 선정비중에 하나인 충청감영중군을 지낸 임주환의 불망비 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기유년인 1849년 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중군임공주환영세불망비(中軍林公柱煥永世不忘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임주환은 1848년인 헌종14년에 충청감영중군에 제수되었습니다. 승정원일기 2474책 (탈초본 121책) 헌종 14년 6월 25일 정묘 35/40 기사 1848년 道光(淸/宣宗) 28년 ○ 鄭基世, 以兵批言啓曰, 景福宮衛將宋元奎·朱快得, 慶熙宮衛將朴萬晳·安松·高漢柱, 俱以病難供職, 呈狀乞遞, 竝改差, 何如? 傳曰, 允。 李鳳緖爲五衛將, 洪憲範爲忠壯將, 金樂文爲都摠經歷, 金在徽爲訓鍊僉正, 李熙敏爲中樞都事, 僉知三單李觀和·車敬輯·文潤宅·李冕熙·韓弘一爲宣傳官, 鄭頤源爲訓鍊判官, 柳相翼爲武兼, 林柱煥爲..

공산성입구 선정비군중에 하나인 중군을 지낸 조병완의 불망비 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중군조공병완영세불망비(中軍趙公秉完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조병완은 1854년(철종5년)에 충청감영중군에 제수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2555책 (탈초본 123책) 철종 5년 6월 25일 임진 34/41 기사 1854년 咸豊(淸/文宗) 4년 ○ 以李寅臯爲同知, 李寅熙·權顗·金善慶爲宣傳官, 柳衡魯爲忠壯將, 元世顯爲內禁將, 蔡東奎爲三陟營將, 具洛喜爲江原監營中軍, 沈魯元爲咸鏡監營中軍, 李敎昌爲平安兵虞候, 申命浹爲南虞候, 孫興元爲同知, 李寅載爲五衛將, 南履容爲慶尙右兵虞候, 許錕爲慶尙左水虞候, 李尙濂爲訓鍊正, 趙萬赫爲洪州營將, 金沃根爲京畿監營中軍, 趙秉完爲忠淸監營中軍,

공산성 선정비군내에 자리하고 있는 중군최관석의 영세불망비 입니다. 비석에는 중군최공관석영세불망비(中軍崔公寬錫永世不忘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2580책 (탈초본 124책) 철종 7년 6월 20일 을사 16/22 기사 1856년 咸豊(淸/文宗) 6년 〈○〉 又啓曰, 五衛將金膺漢·金惠倬, 文臣兼宣傳官李勉愚·李正翼俱以身病猝重, 無望供職, 新除授井浦萬戶金潚, 母年今爲八十歲, 在法當遞, 呈狀乞遞, 五衛將李東鉉前任晉州營將, 具胄元前任洪州營將, 李承德前任淸州營將, 朴壽良前任黃海營中軍, 忠翊衛將韓弘一前任全州營將, 崔寬錫前任忠淸監營中軍, 忠壯衛將鄭雲岐前任京畿監營中軍, 俱在任所, 上來間該廳番次苟艱云, 竝改差, 何如? 傳曰, 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