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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45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이 양신정은 1545년 인종 원년 송정 전팽련이 밀양부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와 있을때 본인이 독서도하고 글도 가르칠 수 있도록 금강가에 있는 목담호수가에 세운 것으로, 1597년 선조30년 병화로 불타없어진 것을 1620년 광해군12년에 다시 지었으나, 1733년 영조9년에 무너져 없어졌..
동이면 금암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마을 중심 언덕위에 있다. 주위의 잡풀과 나무등으로 인하여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금암리는 군동면(郡東面) 용암리(龍岩里)라 불리던 마을이며, 1739년 기록에는 군동면 용암리에 47호가 살았고 1891년 신묘장적(辛卯帳籍)기록에는 55호에서 15세..
[문화재청사진] 옥천군 이원면 현(縣) 마을 옛 창주서원 (創洲書院) 자리에 서 있는 이 묘정비(廟庭碑)는 1682년 숙종(肅宗) 8년 창주서원 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고 세운 비로서 우암(右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글을 짓고 곡운(谷雲) 김수증 (金壽增)이 글을 썼다. 이 비는 장방형(..
조선 중기의 문신인 사서공 전식(1563∼1642) 선생의 초상화이다 충북 유형문화재 17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전식은 선조 22년(1589) 사마시에 합격하고,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아 왜적을 토벌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선조 36년(1603)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예조좌랑을 거쳐 울산판..
금암1리에 위치한 단기 4282년에 세운 고창인 오재국 송덕비이다. 송덕비 옆으로 고창오씨 세거지비와 마을자랑비가 자리하고 있다.
오필렬은 자는 봉여鳳汝, 호는 운암雲岩, 본관은 고창高敞이다. 1858 년(철종 9) 동이면 금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이 끊이지 않았으며, 문학에도 재능을 발휘하여 인근 마을 영재 들의 교육에도 힘쓰니, 그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이 수백에 이르렀다. 그는 효행은 말로만 좋은 음식 과 의복 등으로 봉양하는 양구養口 보다 마음과 뜻을 따르는 양지養知 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 부 모를 섬길 때는 항상 기쁜 얼굴을 하고 슬픈 낯빛이나 성난 낯빛을 삼갔다. 또한 부드럽고 공손한 태 도로 부모를 대하였으며, 부모의 뜻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았다. 특 히 아버지가 물고기를 즐겨 십 리,백 리를 마다하지 않고 구해서 봉양하였다고 한다. 이 후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자 밤낮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