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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 (324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추소 8경 군북면 추소리는 환산環山 아래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문필봉, 봉화봉, 태봉, 매봉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서 산수가 빼어난 곳이며, 들은 좁고 인가人家도 많지 않아 한적하기 그지없다. 이곳은 비록 산촌이기는 하나 생활이 궁색한 편은 아니며, 더욱이 전해오는 선비들의 풍속이 마을의 인심을 풍요하게 하고 있다. 또한 자연경관의 빼어남과 풍광의 온화함으로 이름난 고을이어서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대청댐 준공으로 변화된 산수의 풍치는 오히려 묵객들의 손끝을 떨리게 한다. 일찍부터 전해오는 이곳의 추소 8경을 소개하고자 한다.[옥천군지] 제1경 문암독성文岩讀聲 추소리 추동 마을의 서당에서 선비들이 책 읽는 소리가 문바위까지 낭랑하게 들린다. 문 바위는 바위 속이 뚫려 있어 사람이 다닐 ..
옥천 지재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 김옥정 선생이 후학을 교육하던 서당이라고 전한다. ‘지재(止齋)’라는 명칭은 미호 김원행(金元行, 1703∼1772)선생이 건물의 배산인 구지봉(求止峰)에서 구(求)를 빼고 지재(止齋)라고 하였으며, 현재도 현판이 남아 있다.건물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가공 주초와 덤벙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방형 기둥을 세웠다. 방안의 천장은 특이하게 널반자로 되어 있는데, 서적이나 판목 등을 보관하는 수납 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당 입구에는 처음 건립 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연못이 남아 있다.지재는 당시 유교적 특징을 나타내어 검소하며 소박한 건축기법을 사용하여 지역적 서당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일제..
「적등원루기赤登院樓記」 적등원루는 옥천군 이원면 금강(적등강)가 전망이 좋은 언덕에 세워졌던 누각이다. 1439년(세종 21)에 군수 최선문이 사재를 내어 퇴락한 누각을 중수하는데 일반 백성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중들의 모역으로 공사를 마쳤다. 길손들이 이를 찬양하니 옥천의 부로父老들이 이에 대한 글을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에게 청하여 그가 기문을 적어 보냈다. 서거정의 『사가집四佳集』에 「옥천군적등원루기沃川郡赤登院樓記」가 전하다. 沃 劇郡 南紀之走集也 由京而之忠淸 由忠淸而之慶尙 使華行旅之往復 蹄轂曰相磨也 郡之東南三十許里 有屬邑 曰利山 有江延袤 橫截數十里 曰其仕臨 其上有古院 曰赤登 實處逵道之樞轄焉 大暑祈寒之時 盲風苦雨之日 行者之來止于玆 或値跋涉之難也 道途之晚也 牛馬之乏也 草竊之虞也 則有休焉息焉 登覽焉..
군북 8경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주민들의 심성을 올곧게 형성시켜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 닐 것이다. 1980년 12월 대청댐 준공으로 인하여 옥천군 군북면은 군내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 곳이지만, 수몰 전부터 아름다운 절경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군북 8 경이 전해지고 있다.[옥천군지] 제1경 청석교靑石橋 군북면 증약리 마을 입구 소하천에 세워진 돌다리로 세워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고려초 강감찬 장군이 경주부윤으로 부임하려다 이곳에서 유留하면서 모기의 성화를 받고 부적을 붙인 후 모기가 없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다리로 추정된다. 길이가 7m, 너비 2m 정도이다. 제2경 이지당二止堂) 이백리 이지당 마을에 있는 서당 겸 누각으로 중봉 조헌 선생이 각신..
김철수(金轍洙, 1878~1919) 호는 사술士述이다. 1919년 4월 2일에 고향인 청산면에서 벌어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 다. 4월 2일 청산면의 만세시위는 오후 1시경부터 청서면, 청남면, 보은군 마로면, 삼승면 및 영동군 용산면에서 모여 든 장꾼들과 청산면 학생들이 함께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전개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군중은 더욱 늘어나 밤중까지 만세시위 를 벌이다가 새벽 1시경에 해산하였다. 그리고 4월 4일 밤 8시경에도 수천 명의 시위 군중들이 주재소 주위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를 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 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5명 이 순국하고 수십 명이 부상하였다. 당시 청산면에 살던 5~6호의 일본인 가족들은 헌병주재소로 도피하였고, 주재소내의..
청산 8경 청산면은 땅이 기름지고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절경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또한 자연경관인 산은 높지 않고, 흐르는 물도 깊지 않아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지역으 로 소문이 나서 옛 낙향 선비들이 노후의 휴식처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들은 넓고 관내에 흐르는 보청천은 일찍이 수리시설인 보洑가 설치되어 사람들은 물 걱정 없이 농사일을 하게 되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또한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여유롭게 풍류를 즐기며 살아왔다. 여기에 지금까지 전해오는 청산 8경을 소개하고 자 한다.[옥천군지] 제1경 망일효종望日曉鐘 백운리 뒷산 덕의산 중턱에는 유명한 사찰인 망일암이 청산면을 굽어보는 자리에 터를 잡고 있었다. 이 절에서는 백 년을 하루같이 새벽에 종소리를 울리는데, 그 종소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