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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낭성면 갈산리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낭성면 갈산리에 있는 보성오씨의 사당인 추암사입니다. 갈산리는 보성오씨의 집성촌입니다. 사당1동과 함께 관리동 1동이 자리하고 있으며 사당에는 추암사(楸菴祠)라고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낭성면 갈산리에 있는 보성선씨들의 재실입니다. 숭모재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갈산리로 동네에 접어들면서 동네입구 우사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밑인 절골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숭모재(崇慕齋)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숭모재 옆으로는 샌드위치판넬조 관리동이 1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노(魯)나라 대부(大夫) 선백(宣伯)의 후손인 시조 선윤지(宣允祉)는 1382년(우왕 8) 명나라 문연각 학사(文淵閣學士)로서 사신의 명을 받들고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전라도안렴사가 되어 해안 지방에 침입하여 노략질하던 왜구들을 격퇴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유교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寶城)으로 은거하여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
갈산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이하면 이었으며, 조선 영조후반(1750-1776)에는 갈산리와 소암리로 분리 되어 있었으며 현종때(1845년경) 갈산리로 통합 되었고 1910년 다시 갈산.소암.삼산리로 나누어저 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삼산리의 일부를 삼산리로 넘겨주고 갈산리라 하였습니다. 낭성면 갈산리 안갈미에 있는 보성오씨 사당입니다. 안갈미(上葛)에 있다고 하여 상갈사(上葛祠)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근간에 지은 사당으로 추정이 됩니다. 갈산리에 있는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갈미(上葛) : 갈뫼 안쪽에 있는 마을 둠벙골(蘇岩) : 갈뫼 남서쪽에 있는마을(큰 둔벙이 있었다함.) 백호들 : 둠벙골 남쪽에 있는 마을 중간말 : 갈미 남쪽에 있는 마을 주막거리 : 백호들 서쪽에 있는 ..
갈산리에서 현암리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사천목씨청은공 묘역비석입니다. 산 쪽으로 길을 따라 500여 미터 접근하면 사천목씨 청은공 묘역이 있습니다. 목씨(睦氏)의 유래는 문헌상의 자료가 없어 알 길이 없으나 예전부터 ‘형제상목설(兄弟相睦說)’과 ‘당학사동래설(唐學士東來說)’이 전해져 왔다. 옛날 경남 사천(泗川) 지방에 형제가 살았는데 그들의 우애가 어찌나 깊었던지 그 소문이 널리 퍼져 마침내는 나라에서까지 이 소문을 듣고 그 지극한 형제애를 표창하기 위해서 ‘화목’을 뜻하는 ‘睦’자를 성(姓)으로 내렸다는 것이 ‘형제상목설’의 줄거리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목씨 성은 사회적 덕행자 표창 차원에서 국가[고려]에서 내려 준 사성(賜姓)이라는 것이다. ‘당학사동래설’은 고구려 28대 영류왕618~642)의 ..
낭성면 갈산리 기암서원 뒤에 자리하고 있는 성균진사를 지낸 오석창의 묘지입니다. 비석은 1977년 후손들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망주석과 함께 무덤에는 호석을 둘렀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성균진사오공석창지묘( 成均進士吳公碩昌之墓 )라고 적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