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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낭성면 삼산리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삼산리는 면 최북쪽에 있는 마을로 남쪽은 갈산리, 서쪽은 현암리와 청주시 산성동, 북 쪽은 내수읍에 접해 있는 산촌 마을이다. 삼산리는 청주군 산내이하면의 지역으로 상당산. 인경산. 태봉산이 둘러쌓여 三山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부를 갈산리에 넘겨주고, 화문동을 병합 하여 랑성면에 편입되었으며, 1936년 둔병이를 2리로 분구 하였다. 중간말 : 마을 중앙에 있는 마을(옛날에 洞閣이 있었음.) 새말 : 중간말 동쪽에 있는 마을. 도란말 : 중간말 서쪽에 있는 마을. 마을을 들어갈 때 산모퉁이를 돌아서 간다고 도란말이라 한다. 솟두백이 : 중간말 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 수호신의 표상인 솟대가 있었다고 한다. 탑산리 : 중간말 북쪽 솟두백이 지나서 잇는 마을(산높낮이가 탑을 쌓아..
낭성면 삼산리 삼산2구 마을입구에 있는 개문동성적비 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개문동성적비(開門洞聖蹟碑)라고 씌여 있으며 후면에는 그 내력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 후면에 기술된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삼산리는 원래 두문동이었다. 그러나 개도 72년(서기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개문동이라 하였으니 이는 금강대도 제 2세인 이청학 도성사부께서 당시 왜정의 탄압하에 이 곳 36번지인 최동식의 집에 100일간 은둔하면서 비밀리에 민족정기를 함양하고 흥기도덕가와 봄노래를 지으면서 천운이 회태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8.15광복과 더불어 이 곳을 떠나시면서 "내가 이제까지 문을 닫고 있었으나 앞으로는 문을 열고 살게 하리라"하신 후 부터는 자연적으로 개문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므..
낭성면 삼산리 탑산이 마을에 있는 장수정입니다. 예전에 마을의 식수로 사용되던 샘물입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치만 보존하기 위하여 샘물 주위에 석축을 쌓았습니다. 삼산리는 보성오씨들의 집성촌이었지만 지금은 그 색채가 많이 옅어졌습니다. 이 샘물을 잊지 않기 위하여 마을에서 장수정이라는 이름과 함께 장수정 샘물에 대한 비석을 세웠습니다. 비석은 1996년에 건립하였으며 동리에 장수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이 이 물을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수정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으며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을 마실수 있는 식음판정이 된다면 샘물 앞으로 계단등을 만들어 물 맛을 볼수 있게 하는것도 참 좋을것 같은 저의 생각입니다. 장수정기(長壽井記) 상당산 나린줄기 동쪽으로 청수한 뫼뿌리가 솟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