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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내북면 동산리 (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동산리에 있는 경주김씨의 묘역입니다. 김벽부부의 묘와 함께 그의 부모인 김증손의 묘와 어머니인 전주이씨의 묘 그리고 아들인 김천주의묘등 경주김씨가문의 묘역이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묘역으로 찾아드는길을 잘못들어 논둑길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어서 묘역을 볼수 있었습니다. 김벽(金碧) 부부의 묘 동산골에 있는 경주인(慶州人) 건공장군충순위부사직(建功將軍忠順衛副詞直) 김 벽(金碧)과 그의 부인 숙부인(淑夫人)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쌍분묘로 묘갈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김벽묘 앞에 있는 묘갈은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박광우(朴光佑)가 짓고 세워져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김로(金魯)가 썻고 유씨묘앞의 묘갈은 그들의 사위인 사재감정(司宰監正) 성운(盛運)이 짓고 예조참판(禮曹參判) 이택(利澤)이 쓴..
본래 청산현(靑山懸) 주성면(酒城面) 지역으로 1906년 보은군 주성면(酒城面) 관할로 변경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상리(倉上里)와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東山里)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 상-촌(上村)[마을] 청룡 동쪽에 있는 마을. 동산리에서 제일 위가 됨. 새-터(新)[마을] 청룡 서쪽에 있는 새로 된 마을. 소안-이(素安)[마을] → 수안이. 수안-이(素安)[마을] 청룡 남쪽에 있는 마을. 화전리가 수해를 입어 현 위치로 이주할 때 숲 안쪽이 된다하여 ‘숲안’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수안이’가 됨. 마을 앞에 숲이 울창했다고 함 신 - 기(新基)[마을] → 새터 쐬안 - 말 [마을] 청룡 동쪽에 있는 마을. 바위가 흉하여 보이지 않도록 나무로 숲을 ..
산외면 내북리 동산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공동집하시설이 있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탁기가 보급되기전에는 개울가에서 동네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하는 빨래터기 있곤 했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그 일을 세탁기가 대신 해주면서 마을의 공동 빨래터도 추억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동산리에는 다른 동네에서 보기 힘든 공동빨래터가 아직도 있습니다. 조금 변한것이라고는 게절의 변화에 상관없이 비바람을 피할수 있도록 건물안에 공동빨래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닥에는 빨래판도 만들어 놓고 평상도 있어 마을의 동네 아주머님들의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물이 흐르는 물길에는 스테인레스로 물길을 만들어 깨끗하고 보기도 좋습니다. 동네화합과 마을주민들의 특히 아주머님들의 모임에 구심점 역할읗 하는것 같습니다. 동..
내북면 동산리에 있는 노면청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대정6년(1917년)으로 추정됩니다. 비석후면의 비석의 건립시기는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훼손되였습니다.일제강점기 시절의 일본연호는 많이 훼손된 경우가 있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전의관노면청자헤제중불망비(前醫官盧勉淸慈惠濟衆不忘碑)라고 음각되여 있습니다.비석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길 건너편에 있었는데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노면청은 일제강점기 시절 의료혜택이 미비했던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었으며 빈민들에게는 무료로 의술을 베풀어 질병으로 부터 많은사람들을 구해주었다. 이에 그 혜택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여 이 비석을 세웠다. 노면청은 (1860(철종 11)~1938) 조선 ..
내북면 동산리에 있는 노면청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대정6년(1917년)으로 추정됩니다. 비석후면의 비석의 건립시기는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훼손되였습니다.일제강점기 시절의 일본연호는 많이 훼손된 경우가 있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전의관노면청자헤제중불망비(前醫官盧勉淸慈惠濟衆不忘碑)라고 음각되여 있습니다. 비석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길 건너편에 있었는데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노면청은 일제강점기 시절 의료혜택이 미비했던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었으며 빈민들에게는 무료로 의술을 베풀어 질병으로 부터 많은사람들을 구해주었다. 이에 그 혜택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여 이 비석을 세웠다. 동산리는 본래 청산현(靑山懸) 주성면(酒城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