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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북면 동산리 현감이후윤신청덕선정비 (內北面 東山里 縣監李侯潤身淸德善政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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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북면 동산리 현감이후윤신청덕선정비 (內北面 東山里 縣監李侯潤身淸德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1. 17. 06:21



내북면 동산리  개을가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영조때 청산현감을 지낸 이윤신의 청덕선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현감이후윤신청덕선정비 (縣監李侯潤身淸德善政碑)라고 음기되여 있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이윤신은 영조4년(1728년)에 청산현감(靑山縣監)으로 제수되였습니다.

이 청덕선정비는 그 후인 1729-3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동산리는 본래 청산현(靑山懸) 주성면(酒城面) 지역으로 1906년 보은군 주성면(酒城面) 관할로 변경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상리(倉上里)와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東山里)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이윤신은 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함평(). 자는 덕중(). 초기()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성()이고, 아버지는 인상()이며, 어머니는 최후식()의 딸이다.

1717년(숙종 43) 진사()의 신분으로 숙종이 윤선거()와 그의 아들 증()의 관작을 추탈()하자 이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723년(경종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27년(영조 3) 세자시강원설서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그 뒤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735년에는 진위 겸 진향사(使)의 서장관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이어 사헌부헌납·사간원사간·세자시강원보덕을 역임하였으며 1746년(영조 22)에는 문신중시()에서 으뜸을 차지하여 통정대부()로 승계하였다.


그는 사간원정언으로 재직시에는 과조()를 제정하여 채무 징수를 금지하고 등수를 나누어서 환곡을 정감()할 것을 청하는 소를 올려 이의 시행을 보았으며, 과거에서 농간을 부리는 폐단을 방지하게 하였다. 이윤신[李潤身]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