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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노봉서원 (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현도면 하석리의 노봉서원터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본 수조입니다. 혹시나 석암사나 노봉서원과 관련된 유물이 아닐까 하고 찍어 보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갈길이 된다면 동네 어른들에게 여쭤봐야겠습니다. 민가 담벼락에 기대여 세월을 담고 있습니다.
강고사는 1932년에 보성오씨(寶城吳氏) 문중에서 진사 지선정(止善亭) 오명립(吳名立, 1563∼1633)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971년에 노봉서원(魯峰書院)에 배향되었던 문헌공(文憲公) 대사헌(大司憲) 규암(圭庵) 송인수(1487∼1547)와 포천현감(抱川縣監) 북창(北窓) 정렴(鄭廉, 1506∼1549)을 추향하고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향사하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68년에 중건하고 1971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과 좌우에 쪽문을 달았으며 강고사(江 祠)라는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강고사 건너편 연덕에는 정자인 지선정이 자리하고있다그리고 정자 지선정이 ..
노봉서원은 광해군2년(1610)에 오시립(吳時立), 오유립(吳裕立), 오명립(吳名立), 보성오씨 일문과 정렴(鄭磏)의 처갓집 자손인 유흥림(柳興霖)이 송인수와 정렴(鄭磏)을 모시기 위해 구룡산 자락 노봉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광해군7년(1615)에 완공하고 청액소(請額疎)를 올려 효종9년(1658)에 허락을 받아 현종3년(1662) 사액(賜額, 임금이 현판을 내림, 즉 국가 공인 서원)받았다. 1694년(숙종20) 송준길(宋浚吉, 1706년 검담서원으로 옮김), 1695년(숙종 21) 송시열(宋時烈), 1725년(영조1) 권상하(權尙夏)를 추가 배향하였다가 송준길은 부용면 검시에 검담서원을 지어서 빠져 나갔다. 오시립, 송시열, 권상하가 원장을 하였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
오유립(吳裕立.1575-1658)은 초명이 효립(孝立)이고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는 남산처사(南山處士)이다. 판관 오세양(吳世暘)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오경인(吳景仁)이다. 어려서 부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으나 광해군시기 벼슬을 단념하고 향촌으로 돌아왔다.이후에 청원군 현도면 시목리에 월송정(月松亭)을 지어 이 곳에서 가락을 붙여 시를 즐겨 읊었다.노호리 입향조이다. 신구 비석이 있으며 비석의 전면에는 월송처사오공휘유립지묘(月松處士吳公諱裕立之墓)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오유립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다. 그는 오정립 오시립과 더불어 노봉서원을 건립하여 후학을 가르치고 향풍을 진작시켰으며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증직되였다. 그 후 산세가 좋은 금강가에 위치한 노호리에 정착하였다. 노봉서원은 대원군시절 철폐되여..
노봉서원터는 현도면 하석리 노봉마을에 있다. 노봉서원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노봉마을의 전경이다. 노봉서원이 세워지기전에 석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일명 석암사지는 문의 남쪽 구룡산(九龍山)의 서쪽 기슭이며 금강(錦江)에서 가까운 하석리 노봉(下石里 魯峰)마을에 있는 고사지로 창건시기와 연혁은 미상이나 조선시대의 지리지에 그 사명(寺名)이 나타나고 있어 조선 초에 구룡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폐사된 후에는 이 곳에 노봉 서원(魯峯書院)이 세워졌다가 고종 2년(1865)에 철폐된 후 현재는 논과 밭이 되었다. 노봉 서원은 에 광해군 2년(1610)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니 석암사는 그 이전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93년에 청원군 향토문화연구회에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
노봉서원은 광해군2년(1610)에 오시립(吳時立), 오유립(吳裕立), 오명립(吳名立), 보성오씨 일문과 정렴(鄭磏)의 처갓집 자손인 유흥림(柳興霖)이 송인수(宋麟壽)와 정렴(鄭磏)을 모시기 위해 구룡산 자락 노봉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광해군7년(1615)에 완공하고 청액소(請額疎)를 올려 효종9년(1658)에 허락을 받아 현종3년(1662) 사액(賜額, 임금이 현판을 내림, 즉 국가 공인 서원)받았다. 1694년(숙종20) 송준길(宋浚吉, 1706년 검담서원으로 옮김), 1695년(숙종 21) 송시열(宋時烈), 1725년(영조1) 권상하(權尙夏)를 추가 배향하였다가 송준길은 부용면 검시에 검담서원을 지어서 빠져 나갔다. 오시립, 송시열, 권상하가 원장을 하였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