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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만동묘 (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만동묘 주위로 펼쳐진 이곳 화양동은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우암 송시열 유적이다.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만동묘의 자리는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다. 만동묘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송시열 무덤 및 신도비 외에 암서재 근처의 암벽에 ‘충효절의’·‘비례부동’이란 글을 새긴 곳이 많이 있다. 송시열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신이 깃..
청천면 화양동에 소재한 만동묘안에 있는 만동묘정비입니다.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묘정비는 사원에 세우는 비로, 사원을 건립하게 된 동기와 모시는 인물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록해 둡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중국 명나라의 임금인 신종과 의종의 제사를 지내는 ‘만동묘’라는 사당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만동묘는 우암 송시열의 가르침에 따라 그의 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나라 의종이 죽은 지 60년이 지난 숙종 30년(1704)에 지은 것입니다. 비의 형태는 연꽃무늬를 새긴 바닥돌 위에 네모난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입니다. 비문은 일본인들이 고의로 글자 획들을 쪼아 놓아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영조 23년(1747)에 세웠으며, 이재가 글을 ..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화양동에 소재한 먄동묘를 중수할때 새겨놓은 만동묘 중수기입니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명나라 신종(神宗)을 제사지내기 위해, 1704년(숙종 30) 충북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화양동(華陽洞)에 지은 사당이다. 인조 때 청나라를 다녀온 민정중이 구해온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글씨 한 폭을 송시열(宋時烈)에게 전해주자 이글을 보고 의종이야 말로 예(禮)를 지켜낸 최고의 군주로 칭송하였다. 존명 사대주의 사상에 열렬했던 송시열은 이를 받고서 이 글을 화양동 석벽(石壁)에 새겨 놓고 석벽 위에 공부하는 사당을 지었는데 송시열이 죽을 때 그의 제자 권상하(權尙夏)에게 이곳에 묘우(廟宇)를 지어 신종과 의종을 제사..
청천면 화양리에 위치한 우암 송시열선생의 유적입니다 화양서원서 부터 만동묘 그리고 만동묘정비등 우암선생의 많은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1695년(숙종 21)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하기 위해 권상하(權尙夏)·정호(鄭澔) 등 노론이 주도해 설립했으며, 다음해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곳은 송시열이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친 연고지이며, 일찍이 명나라 의종의 '비례부동'(非禮不動) 4자의 친필을 얻어 암벽에 새기고 암자를 세웠던 곳이다. 또한 1717년에는 만동묘(萬東廟)가 세워졌던 곳으로서 노론집권기에 국가로부터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는 등 송시열을 제향한 전국 44개 서원 가운데 위세가 가장 큰 서원이었다. 화양서원은 권세가 막강하여 백성들의 폐해가 심했다. 즉 제수전(祭需錢)의 명목으로 각 군·현에 화..
묘정비는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취지와 그 서원의 주인·모시는 인물에 대한 문장 등을 기록해 두는 것으로, 이 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을 모신 화양서원의 자리에 놓여 있다. 화양서원은 조선 숙종 22년(1696)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창건되던 해에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