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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문의문화재단지 (4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산관은 조선시대 문의현의 객사이다. 객사는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초하루 보름으로 대궐을 향하여 절을 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한편,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한 관아건축이다. 건물구조는 지붕이 좀더 높은 3칸의 정당이 중앙에 있고 그 좌측에 4칸, 우측에 3칸의 익실(翼室)을 두었으며, 전면에 중문․외문, 측면에 무랑 등이 부속되었고, 정당은 벽돌을 깔고 좌․우익실은 한국식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66년(현종7년) 문의읍지에 현령 이명하가 옮겨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지붕의 암막새 기와에‘옹정육년 무신사월(擁正六年 戊申四月)’이라는 명문으로 보아 1728년(영조4년)에 중건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 건물은 1979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문의향교 ..
옹기는 일상생활에 유용한 쓰임새가 있는 그릇으로 붉은 갈색의 유약을 입혀 구운 질그릇을 말한다. 옹기는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만큼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예부터 옹기를 제작하는 관원이나 장인을 두어 생산토록 하였다. 기능보유자 박재환의 집안도 200여 년 전부터 옹기를 만들어 왔다. 박재환의 6대조인 박훈(朴勳, 1484∼1540)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하여 강외면 연제리에 정착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박재환은 1941년 11살 때에 생활 타개책으로 아버지 박원규의 뒤를 이어 옹기공장에 취업하며 장인의 길에 들어섰으며 1958년부터 보은 송평리 옹기공장, 용인 삼계리 옹기공장, 안성 양협리 옹기공장, 인천 경서동 옹기공장 등에서 옹기 기술을 전수받았다. 1971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선대..
1927년 7월 20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신재한(辛在漢)이며, 어머니는 김대련(金大湅)으로 2남 3년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9년 아버지가 죽자 1932년 청주로 이주하여, 초등학교와 중등과정을 마치고 신흥대학교(현 경희대학교)에 수영특기생으로 입학 1948년 런던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늑막염의 발병으로 포기하고, 1951년에는 공군에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1963년 남기정(南基貞)과 혼인하여 이듬해 장녀 수정(秀晶) 출생, 1968년에는 어머니가 죽었으며, 같은 해 차녀 수진(秀眞)이 출생하였다. 1975년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로 내려가 농장을 경영하다가 1993년 9월 30일 지병인 담도암으로 사망했다. 1955년 『한국일보』에 시 ..
이 충신각은 임진왜란때 조헌(趙憲)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충신 의성인(義城人) 김선복(金善復, 1571∼1592)의 충절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지금의 충신각은 1957년에 문의면 등동리 정가울 마을 앞에 중건한 건물로서 1989년에 해체복원한 사실이 있으며, 1998년에 문의문화재단지내의 현위치로 옮겨 세웠다.건물은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사면을 홍살로 막고 안에는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김선복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의 충신.본관은 의성(義城)이다.임진왜란 때 중봉(重峰) 조헌(趙憲, 1544~1592)과 더불어 창의하여 1592년(선조 25) 8월 17일 충청도 금산 전투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였다.금..
서덕길은 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으로 양경공(良景公) 서유조(徐愈早)의 후손이다. 청원군 문의면 도원리 출신이며, 아버지는 서봉남(徐奉南)이고, 할아버지는 서복만(徐福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서응년(徐應年)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님 공양에 최선을 다하였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저수지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는데, 무릎을 꿇었던 자리가 녹으면서 잉어가 뛰어나와 구해드렸다. 또한, 겨울에 산신령(호랑이)의 인도로 아버지가 드시고 싶은 홍시를 구해드렸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머니의 병환에도 약과 음식을 손수 마련하여 드렸으며 더러운 빨래도 직접 하였다. 하늘에 어머니의 쾌유를 빌면서 때때로 손가락의 피를 내어 어머니의 병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