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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북이면 석화리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북이면 석화리 마을초입에 있는 이규필사적비입니다. 석초경주이공규필사적비(石蕉慶州李公圭鉍事蹟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석화리는 경주이씨들의 집성촌입니다. 이규필 사적비옆에는 서계 이득윤유허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규필(李奎鉍, 1900~1986)은 행정가․사회사업가. 본관 경주. 청원군 강내면 석화리 출신. 부친은 철영(喆榮),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청원군 농회(農會) 기수와 북일․강서․북이 3개면 면장으로 있을 때는 윗사람을 받들고 아랫사람을 잘 이끌어 그 사이를 잘 주선하였다. 겸손하고 공경하며 온화하고 부드럽게 대하려고 노력하였으므로 면민이 감화하여비를 세워 공적을 기리었다. 청주시 교육위원과 유도회(儒道會) 청주지부 부지부장과 도본부 감찰위원장과 청주지부 지부장을 통해 교육사업을 전개하..
북이면 석화리는 경주이씨의 집성촌입니다.석화리(돌꼬지, 석화)는 본래 청주군 산외이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돌로 꽂이를 이루었으므로 돌꽂이 또는 석화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대리, 소롱리, 대길리의 각 일부와 산외삼면의 비 중리 일부 를 병합하여 석화리라 해서 북이면에 편입되었습니다. 이득윤은 조선 중기의 역학자(易學者), 악인(樂人)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에 진사가 되고 1597년 학행으로 추천되어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독서에 전념하다가 왕자(師父)가 되고 이어서 형조좌랑·의성현령을 지냈다. 광해군(光海君) 때 혼란한 정계를 피하여 고향 청주에..
석화리(돌꼬지, 석화)는 본래 청주군 산외이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돌로 꽂이를 이루었으므로 돌꽂이 또는 석화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대리, 소롱리, 대길리의 각 일부와 산외삼면의 비 중리 일부 를 병합하여 석화리라 해서 북이면에 편입되었다. 날이 춥다. 요즈음은 차들이 다니지 않는 옛길을 따라 옛님들을 찾아본다. 빙판이 진 길이지만 천천히 몰며 좌우를 살피다 보면 만날수 있는 멋진 기회를 주는 님들이 있다. 석화리에서 만난 정려비도 또한 그렇다. 마을 끝언저리 야트막한 야산아래 시멘트 블럭담을 두르고 있다. 이곳 석화리는 경주이씨들의 집성촌이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 서있습니다. 큰 길이 생기기전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던 길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진사호송당이혼지처열녀안정나씨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