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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리면 사담리 (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사리면 사담리의 지명이 생긴 연못입니다.모래못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동네주민들의 산책로로 많이 이용이 되고 있습니다.관계기관에서 산책로도 만들고 주변을 정화하는 중입니다. 사담리(沙潭里)는 본면의 중서부에 있는 농촌마을이다. 모래가 많고 큰 못이 있으므로 모래못이라 한데서 사담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사담, 고래을, 새터 등이 있다. 고래을은 처음에는 논이었던 땅인데 병인년 장마에 보광산 모래에 쓸려 백사장으로 변하게 되어 그 후 이곳에 마을이 들어서게 되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새터는 모래못 서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로 원래 가전부락(駕田部落)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인석영세불망비의 원래 위치는 사리면 시동마을이다.지금의 시동마을의 버스정류장 주위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도로가 확장되는 공사를 하면서 비석의 위치를 고민하다가 지금의 면사무소 앞 화단에 다른 비석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지금도 많은 문헌에는 시동마을에 자리하고 있는것으로 기술되어 있으니 모르시는 분들은 헛걸음을 할수 있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행군수이후인명연세불망비(行郡守李侯寅鉐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2011년에 이자리로 옮긴것으로 전해집니다.
사리면 사담리 경로당을 바라보며 왼쪽길을 따라 200여미터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단양우씨가족묘원이 보입니다.가족묘원뒤로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글씨입니다.지명은 예전에 심씨가 살던시절에 서당이 있던 곳이라하여 서당골이라고 불리웁니다.바위에는 서암정 숭정신사칠십사년(西巖亭 崇禎辛巳七十四年)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서암정이라는 정자는 1701년 서암거사인 우필성(1653-1730)이 지은 정자로서 지금의 바위 위쪽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지금도 그 정자터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괴산군지참조]
사리면 사담리 하도마을에 위치한 정원사 화단에 자리하고 있는 민불이다. 정원사는 조게종 말사로서 하도마을 마을끝에 위치하고 있다. 머위잎 친구삼아 산신각밑에 정원에서 햇빛바라기를 하고있다. 조금은 익살스러운 형태로 장승개념으로 민초들의 바램을 듣고 있는것 같다. 두툼한 입과 뭉툭한 코 그리고 간략화한 모습이 예전에 동네어귀에 세워놓고 마음의 아픔을 빌었던 장승이나 미륵으로 불리우던 민간신앙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있다. 동네에서는 미륵불로 불리우고 있다.
사리면 사담리에 위치하고 있는 수살맥이 이다. 마을의 안녕을 해치는 요소 가운데 물은 위협의 요소였다. 수재를 당하는 쪽에서 이를 막고 자연재해를 일정한 풍수원리에 입각해 마을 어귀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수구맥이의 요체이다.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이 이러한 전통적 사유를 낳았으며, 신앙적으로 승화하였다.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거나 또는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건물, 나무, 탑 등을 이용한다. 사담리 도로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말채나무밑에 거북형상의 돌을 중심으로 냠,녀선돌이 위치하고있다. 수구맥이는 수구멕이, 수구매기, 수구메기, 수구신, 수살맞이, 좌우수살멕이 등으로 달리 지칭하기도 한다. 농악패가 하는 고사반에서도 수구막이라고 하는 특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