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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서계 이득윤 (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원면 가양리 수락골은 경주이씨들과 관련이 많은 곳입니다. 수락영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경주이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 효자 열녀들의 비석이 있습니다. 또한 서계 이득윤의 묘와 함께 창평공 이공린의 묘역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느티나무는 서계 이득윤이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느티나무는 청주시 지정번호 제 40호로 1982년 11월 11일에 지정되었습니다.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지정당시 나무의 수령은 280년 높이는 18미터 둘레는 4.5미터이며 소재지는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가양리 144번지 이며 수락영당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나무밑에는 사패비와 함께 수락괴정원이라 각자된 자연암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물이 흐르는 개울가 옆에는 농금암이라는 각자 그리고 민가뒤에는 상읍암이라는 각자가 있습니다. ..
몇 번이고 걸음을 한 곳입니다.미원면 가양리 수락골 불사천가 바위에 각자되어 있는 농금암弄琴巖이라는 각자입니다. 서계 이득윤의 글씨라고 알려져 있는데 후대에 서계선생을 그리며 문인중에서 새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가까운 곳에 상읍암相揖岩이라는 각자도 있습니다. 농금암弄琴巖이나 상읍암相揖岩또한 동 시대에 같은 사람에 의하여 각자된 듯 보입니다. https://king6113.tistory.com/6755 미원면 가양리 상읍암각자(米院面 佳陽里 相揖岩刻字) 미원면 가양리 수락골에 서계 이득윤선생과 관련된 암각자가 있다는 글을 읽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개천쪽의 바위를 살펴보았지만 발견할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개천가를 돌아 보았 king6113.tistory.com 미원면 가양리 농금암각자..
북이면 석화리는 경주이씨의 집성촌입니다.석화리(돌꼬지, 석화)는 본래 청주군 산외이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돌로 꽂이를 이루었으므로 돌꽂이 또는 석화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대리, 소롱리, 대길리의 각 일부와 산외삼면의 비 중리 일부 를 병합하여 석화리라 해서 북이면에 편입되었습니다. 이득윤은 조선 중기의 역학자(易學者), 악인(樂人)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에 진사가 되고 1597년 학행으로 추천되어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독서에 전념하다가 왕자(師父)가 되고 이어서 형조좌랑·의성현령을 지냈다. 광해군(光海君) 때 혼란한 정계를 피하여 고향 청주에..
1717년(숙종 42)에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 1553∼1630)을 주향으로 후에 주일재(主一齋) 윤승임(尹昇任, 1583∼1688), 옥계(玉溪) 박곤원(朴坤元, 1477∼1607), 돈암(遯菴) 윤사석(尹師晳)을 차례로 추배하였다. 1871년(고종 8)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89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위에는 세심정 추월정, 만경정등 정자들이 있으며 파평윤씨 재실인 경모사도 자리하고 있다. 옥화서원의 주향자인 이득윤의 본관은 경주이다. 고려말 문신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후손이며 사복사판관 이곤(李鯤)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이잠(李潛), 어머니는 진주강씨 강응청(姜應淸)의 딸이다. 형조좌랑‚ 의성현령‚ 괴산군수 등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역학과 음악에 ..
미원면 가양리 수락골에 서계 이득윤선생과 관련된 암각자가 있다는 글을 읽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개천쪽의 바위를 살펴보았지만 발견할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개천가를 돌아 보았지만 볼수가 없으니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이튿날 경주이씨 종친회와 관련이 된 분을 수소문하여 글씨에 대해 질문을 하니 알아보고 전화를 준다고 하신다. 아마 여기저기 연락을 하셨나 보다. 수락영당 느티나무 뒷쪽 염소를 키우는 집 뒷편 바위에 있다는 정보를 전해주신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다. 수락골로 향하는 길에 군데군데 얼음이 얼었다. 12월이 제 몫을 하는 모양이다. 저어기 보이는 집이 염소를 키운다는 그 집이렸다. 방문을 하니 구순을 바라보시는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에 글자 새겨진 ..
미원면 옥화리 세심정 가는 길에 이홍복효자비와 같이 서있는 서계 이득윤선생의 유허비입니다. 서계이선생옥화유허비(西溪李先生玉華遺墟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득윤李得胤 은 (1553~1630) 조선조의 인물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 고려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유학자 서기(徐起)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박지화(朴枝華)에게 역학(易學)을 배우고, 1588년(선조 21)에 진사가 되었다. 1597년 학행으로 추천되어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독서에 전념하다가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고 이어서 형조좌랑·의성현령을 지냈다. 광해군 때 혼란한 정계를 피하여 고향에 머무르면서 김장생(金長生)·정두원(鄭斗源) 등과 서한을 교환하며 역학과 음악을 토론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