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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수안보면 미륵리 (9)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수안보면 미륵리사지에서 발굴중인 석불옆에 있는 석조부재입니다. 석불입상의 발굴이 언제까지인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미륵리사지를 찾았다가 그냥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빨리 보수등이 끝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이다.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물지가 동·서·남·북으로 회랑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一然)에 의하여 『삼국유사』가 저술되었던 고려 충렬왕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었던 듯하다.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 1의 신라 아달라니질금(阿達羅尼叱今) 항목에, “계립령은 지금 미륵대원의 동령이다(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원(院)의 경영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출..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입니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은둔하기 위하여 가던 도중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 앞으로 나 있는 고대 교통로는 소백산맥을 넘는 하늘재로 통하는 길목에 해당된다. 따라서 충주 미륵대원지는 오래전에 사찰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통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원으로서의 기능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원사(大院寺)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되기도 했다. 현재 이곳에는 석불입상을 비롯하여 석탑·석등·귀부·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으며, 발굴 결과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오층석탑은 석불 앞 사원의 중심에 세워져 있다.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비교..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 입구에 있는 고려 전기 당간지주. 충주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멸망함에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당시 누이인 덕주공주(德周公主)는 월악산에 덕주사(德周寺)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으며, 태자는 석굴을 창건하여 불상의 방향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충주 미륵대원지에는 석굴 형식으로 조성된 석불입상과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귀부 등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현재 사찰은 소실되었지만 많은 유물들로 보아 대규모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간지주는 파손되어 한쪽에 눕혀져 있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다듬었으며 바깥쪽 면에 연화문을 새겨 상당한 정성..
석불입상과 5층석탑 사이에 있는 석등으로 균형이 잘 잡힌 우수한 석등이다. 받침돌은 4각형으로 윗부분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의 간주석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8각형의 돌기둥으로, 상대석에는 앙련을 조각하였다. 위로는 등을 설치했던 8각형의 회사석이 있는데 4면에 화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