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충주박물관
- 곡산연씨
- 티스토리챌린지
- 오블완
- 충북의 문화재
- 단지주혈
- 법주사
- 사인암
- 문의문화재단지
- 부도
- 상당산성
- 한독의약박물관
- 선돌
- 화양구곡
- 사과과수원
- 효자문
- 밀양박씨
- 공산성 선정비
- 효자각
- 문경새재
- 보성오씨
- 각연사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국립청주박물관
- 공주박물관
- 부여박물관
- 충북나그네
- 청주박물관
- 경주김씨
- 청풍문화재단지
- Today
- Total
목록안동김씨 (1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은 부용산 자락에 마을을 이룬지 400여 년이 지났다. 그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마을 사람은 산자락의 척박한 땅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유형의 문화유산을 풍성하게 남겨놓았다. 특히 음성군의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간와..
임시대 처 안동 김씨(任時大 妻 安東金氏, 1756~1816) 증숙부인(贈淑夫人) 안동 김씨는 청원군 북이면 선암리 1구 풍천임문(豊川任門)으 로 시집 온 조선조 효부이다. 증 통정대부 호조참의(贈通政大夫戶曹參議) 임시대(任 時大)의 아내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집와서도 시부모 모시기에 정성을 다하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시아버지가 노망(老妄)이 들어 밤낮과 때를 모르고 무단히 집을 나가 산과 들을 헤매었다. 김씨는 애타게 찾아 정성껏 업어 서 모셔왔다. 추위에 떠는 시아버지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따듯하게 녹여 드리고, 목 이 메어 식사를 못하게 되니 젖을 짜서 들게 하였다. 또 정월에 앵두가 먹고 싶다 하 자 후원에 있는 앵두나무를 잡고 애통하게 우니 홀연히 몇 개의 앵두가 달..
김극(金棘, 1613~1637)조선조 충신. 본관 안동. 자 성화(聲華). 청원군 북이면 현암리 출신.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흡(洽)이다. 어려서부터 품성이 어질고 착했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또한 기골이 장대하였고 무예를 즐겼다. 1512년(중종 7)에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습독(訓練院習讀)을 시작으로 고성현감(固城縣監)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모시고 피난하였다. 호병(胡兵)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24세 였다. 인조는 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했으며, 병조참판에 추증하였다.1960년에 청원군 북이면 현암리에 정문을 세웠다. 묘소는 북이면 현암리에 있으며 1919년에 세운 묘갈이 있다. 이 충신각은 1960년에 안동인(安東人)..
이 신도비는 조선조 인조때 명신인 하담 김시양선생의 신도비로 1670년(현종11년)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가인 조경(趙絅)이 충익공 김시양의 아들인 김휘(金徽)의 요청으로 지었으며 글씨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이정영이 썼다. 비로 대석의 양식은 소략하나 가첨석..
이 정려각은 효자 김만협(金萬協, 1640-1693)의 정려로 숙종 18년(1692)에 세운 것인데, 1985년 효자 김일(金溢, 1719- ? )의 정려를 합설하였다. 김만협의 자는 세진(世珍), 본관은 안동이며 김천해(金天海)의 아들이다. 부친의 임종이 가까우매 단지주혈하여 5일을 더 연명하였다. 3년 복상동안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