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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옥산면 덕촌리 (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옥산면 덕촌리 마을 뒤산에 있는 하동정씨의 묘역입니다. 문절영당에 들렸다가 발길을 했습니다. 충의위를 지낸 정승길의 묘지등이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충의위는 1418년(세종 즉위년) 개국(開國)·정사(定社)·좌명(佐命)의 3공신 자손들이 주로 소속되도록 만들어진 특수층에 대한 일종의 우대 기관이었다. 나중에는 공신 자손의 적자(嫡子)·적손(嫡孫)만이 아니라 중자(衆子)·중손(衆孫)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뒤에 범위가 더욱 넓어져 공신 자손으로 적자손(嫡子孫)이 없을 경우에는 첩자손(妾子孫)이라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게 하였다. 충의위는 위의 공신 자손들이 18세가 되면 아무 시취(試取)의 관문도 거치지 않고 입속되어 군사적 실력과는 거의 관련 없이 입직근무(入直勤務)..
옥산면 덕촌리에 있는 이 열녀각은 1854년(철종 5)에 정검(鄭儉)의 부인 충주 지씨(忠州池氏)의 정렬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열녀각은 1927년에 중수하고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열녀문 편액을 걸었다. 또한 1931년에 후손인 정두현(鄭斗絃)이 짓고 쓴 중수기(重修記)가 걸려 있다.정검의 충신문도 겸하고 있다. 정검(鄭儉)은 하동인으로 임진왜란때 왜군이 청주로 침입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분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에 대항하였다.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왜군의 기세를 꺽지 못하고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또한 정검의 처인 충주지씨는 왜병에게 발각되여 왜병이 충주지씨의 미색에 취해 겁탈하려하자 충주지씨 그왜..
덕촌리는 하동정씨들의 집성촌입니다.덕촌리 마을안으로 진입하면 문절공영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립운동의 발원지로 덕신학교와 함께 선대들의 독립정신을 잊지않기 위하여 산책길등 많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덕은정해윤송덕비(德隱鄭海尹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덕촌리에 마을회관을 지을때 자신의 토지를 희사하여 덕촌리회관이 건립하는데 크게 기여한바 그 뜻을 잊지않기 위하여 1989년 8월30일 마을주민의 이름으로 송덕비를 세웠다. 덕촌리 마을자랑비와 함께 마을회관을 지키고 있습니다. 덕촌리는 평야가 넓으며 북쪽과 남쪽이 모두 하천이 흐른다. 자연마을에는 반곡, 보촌, 광담말, 광촌, 서촌, 괴동, 신기, 지월, 삼성골, 팔모종, 미평이 있다. 보촌은 수로계 도랑인 보가 지나간다고 해서 지어진 명칭이다. 광..
옥산면 덕촌리에 있는 이 열녀각은 1854년(철종 5)에 정검(鄭儉)의 부인 충주 지씨(忠州池氏)의 정렬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열녀각은 1927년에 중수하고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열녀문 편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