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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이다.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물지가 동·서·남·북으로 회랑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一然)에 의하여 『삼국유사』가 저술되었던 고려 충렬왕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었던 듯하다.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 1의 신라 아달라니질금(阿達羅尼叱今) 항목에, “계립령은 지금 미륵대원의 동령이다(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원(院)의 경영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출..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마전군수를 지낸 홍재응의 이야기가 나온다. 승정원일기 2461책 (탈초본 120책) 헌종 13년 5월 6일 갑신 11/16 기사 1847년 道光(淸/宣宗) 27년 李胤愚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再政。 以李胤愚爲瑞興府使, 宋在誼爲旌善郡守, 洪在應爲麻田郡守, 朴志壽爲淸河縣監, ..
막기선돌은 '주살백이'로 불리우며 대청댐 수몰시 마을어귀로 이동하였던 것을 이 곳 옥천선사공원으로 옮겨서 복원하였다. 크기는 165*100*40센티이며 암질은 편마암이고 윗부분은 둥글게 손질하였다.여성선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체적으로 배가 불록한 타원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
팔성리 지천서원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팔성리 마을안으로 들어서면 지천서원을 만나게 된다 의성김씨 효열비는 지천서원 입구 맞은편에 붉은벽돌담을 두르고 있다. 의성김씨는 음성군 출신의 열녀(烈女)이다. 의성김씨는 김용대(金容大)의 처로서 의성김씨가 대성인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에서 김상빈(金相彬)의 딸로 태어나 19세에 결혼하여 음성군 생극면에서 살았다. 홀로된 시어머니를 효성으로 모시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23세 때 남편이 병환으로 사망한 뒤에도 늙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5대 독자인 당시 두 살의 아들을 키워냈다. 노환의 시어머니에게 도리를 다하여 간호하였으나 76세에 사망하니 주위에서는 시어머니가 장수한 것은 며느리의 효성이 지극해서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의성김씨는 57세에 사망하였다. 음성군으로부..
율량동 율봉공원내에 자리하고 있는 찰방겸외사관(外史官)을 지낸 김하련의 거사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행찰방겸외사관김공하련거사비(行察訪兼外史官金公河璉去思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을미(乙未)2월(1895년) 입니다. 외사관(外史官)이라 함은 지방의 사실(史實) 즉 지방사를 기록하던 직책을 말합니다.거사비(去思碑)라 함은 감사나 수령이 그 임기를 다하고 그 고을을 떠날때 백성들이 선정(善政)에 감사하는 뜻으로 세우는 비석을 말합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김하련(金河璉)은 승정원일기 138책 (탈초본 3032책) 고종 30년 3월 26일 무신 23/31 기사 1893년 光緖(淸/德宗) 19년 〈○〉 有政。 吏批, 判書沈相薰牌招不進, 參判李根命進, 參議金天洙牌招不進, 同副承旨沈宜純進。 以吏批言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