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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음성향교 공적비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사업가.오주영은 조선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의 11세손이며 오극선(吳克善)의 아들이다. 2세 때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신청리로 이사하고 1920년 12세 때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花洞)으로 이사하였으며, 1921년에는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고내리로 이사하였다.1922년 14세 되는 해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으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음성개량학교 4년과 서울중동학교 속성과 1년을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의 검정고시를 거쳐 17세 때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하고 너그럽고 후하여 젊어서 명예를 얻기보다는 고장에 정착하여 스스로 도정업 등 실업에 종사하며 근면 성실과 검소를 바탕으로 남에게 널리 베푸는 생활을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위치하고 있는 윤필 불망비의 모습이다. 비석에는 군수윤후필영세불망비(郡守尹候泌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윤필은 승정원 일기에 의하면 고종 33년 2월 20일 [양력4월2일] 을유 4/8 기사 1896년 開國 505년 光緖(淸/德宗) 22년....寧遠郡守安瀷, 陰城郡守尹泌, 谷山郡守鄭誾朝, 仁同郡守李奎白, 錦山郡守李奎文, 依願免本官...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정현석의 선정비.정현석은 철종 대의 음성현감이었으며,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비문으로 보아 음성현감 재직 때 선정을 베풀었던 것으로 보인다.선정비는 1860년(철종 11)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총 높이는 129㎝이며 비신과 개석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碑身)은 높이 98㎝, 앞면 51㎝, 측면 11㎝이고, 개석(蓋石)은 높이 31㎝, 앞면 52㎝, 측면 15㎝이다. 비 앞면에 '현감정후현석애민흥학영세불망비(縣監鄭侯顯奭愛民興學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정현석은 1817년(순조 17)~미상. 조선 말기 관리. 자는 보여(保汝)이고, 호는 박원(璞園)이다.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교관(敎官)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입니다.성규주는 순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불망비를 세웠다.성규주 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충주로 가는 구 도로를 따라 1㎞쯤 올라가면 음성향교가 나오는데 그 앞에 있다.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1매석을 요철을 주어 구분한 모습이며 전체 높이는 122㎝이다. 전면 중앙에 세로 한 줄로 비문을 새겼으며 뒤쪽에는 아무런 글도 적혀 있지 않다. 비문은縣監成侯○○愛民善政碑(현감성후○○애민선정비”라고 음각되어 있다. 성규주 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1기가 있고, 이곳에 1기가 있어 주목되나 2기 모두 시대를 구..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종청의 선정비입니다.이종청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일(仲一)로, 서울 태생이다. 부친은 승정원우승지(承政院右承旨) 이위달(李渭達)이다. 1837년(헌종 3) 식년시 진사(進士) 3등 27위로 입격하였다. 1844년(헌종 10)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으로, 이듬해 음성현감에 부임하였다. 선정비는 1849년(헌종 15)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비갈형의 돌을 통째로 사용하여 상단 부분을 삼각 꼴로 만들고, 원형의 장식을 하였다. 상단과 비신을 구획한 뒤 앞면에 선정비문과 건립 연대를 적었다. 전체 높이 130㎝이다.비신 앞면에 '현감이후종청애민선정비(縣監李侯鍾淸愛民善政碑)'라 쓰여 있고, 도광(道光) 연간의 ..
향교 앞의 불망비에는 ‘도순찰사민공치상영세불망비(都巡察使閔公致庠永世不忘碑)’라 쓰여 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공충감사를 연임했던 1870년이다. 민치상(1825-1888)은 조선후기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양(景養), 사호(賜號)는 하당(荷堂).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전강(殿講)에서 수석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849년 홍문관수찬에 임용되었다. 1850년 8월 진하사은 겸 세폐사(進賀謝恩兼歲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56년(철종 7) 홍문관부응교·예방승지, 1859년 성균관대사성, 이듬해 홍문관제학을 역임, 이어 도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