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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풍천임씨 (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임성순은 공직에 투신하여 북이면 재무게,서무계 주임등을 거쳐 부면장을 역임하고 청백한 공무원으로 면민들의 선망을 받아 1960년에 민선면장(1960.12.27~1961.06.07)으로 피선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5.16혁명으로 공직을 사퇴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면서도 지역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하여 수리안전답을 조성하고 정부지원을 받아 불당골에 소류지를 신설하였으며 동리에 전기시설을 할수 있는 시설융자등을 얻었다.1978년에는 대청호조절지 위치로 동리가 수몰될 위치로 편입되어 많은 동네 주민들이 불안해 하는 가운데 선생은 각계에 호소하여 제외되기도 하였다. 1980년에 발생한 여름장마 폭우로 인하여 마을의 도로와 마을회관이 유실되자 이듬 해 공의 노력으로 석축으로 제방공..

북이면 선암리 마을초입에 1999년에 세워진 풍천인 죽청 임화순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죽청풍천임공화순공적비( 竹淸豊川任公華淳功績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임화순의 공적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임화순은 천안에서 3년여 동안 한문수학을 한후 고향인 이 곳 선암리로 돌아와 마을의 아이들을 모아 한문수학을 교육시켰으며 또한 북이면 대길국민학교의 육성회장으로 지역의 교육발전에 기여 하였으며 청주향교 교화 문화부장에 임명되어 유림발전에 기여 하였으며 선암리 경로당 회장도 역임하는 등 충과 효 그리고 교육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습니다.또한 풍천임씨선암종중의 종친회장을 지내며 종중발전에도 기여 하였고 선조인 감역공의 사당을 건립하는 등 공적을 지대하므로 공의 공적을 기리며 그 공적을 잊지않기 위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풍천임씨(豊川任氏) 횡성공파(橫城公派) 청산공종회(靑山公宗會)의 사당입니다.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청주시로 가는 국도 36호선의 왼쪽에 자리한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아래행테의 마을회관 옆에 있다. 사묘는 문중에서 조상들의 위패..
[정의]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풍천임씨(豊川任氏) 횡성공파(橫城公派) 청산공종회(靑山公宗會)의 사당. [개설]사묘는 문중에서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므로, 문중이 번성한 곳에서는 최근까지 크게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사당에 제사의 기능뿐만 아..
임기백(任岐白, 1777~1803)은 조선시대 효자. 본관 풍천. 자 공성(公成), 호 영은(靈隱). 청원군 북이면 선암리 출신. 일찍이 7세 때 소학을 배우고 효 사상을 깨우친 이래, 일생 동안 뛰어난 효행으 로 만인의 사표가 되었다. 어린 시절, 험한 산 속에서 약초를 캐고 깊은 물에서 고기 를 낚아 병약한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공의 나이 15세 때 부친은 이미 병이 깊 었다.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않고 성심으로 간병했으나 아버지의 병은 크게 호전되지 않 았다. 공은 몇 차례나 손가락을 베어 수혈하니 부친은 마침내 회생하였다. 그 후에도 아버지를 지성으로 봉양한 결과 부친은 천수를 다하였다. 23세 때 부상(父喪)을 당하 였다. 산소 아래 초막을 짓고 3년간 거의 식음을 전폐하면서 못 다한 효..
임헌호 처 문화 유씨(任憲鎬妻 文化柳氏, 1854~1925) 문화 유씨는 청원군 북이면 선암리 1구 풍천임문(豊川任門)으로 시집 온 조선조 효 부이다. 통덕랑(通德郞) 임헌호(任憲鎬)의 아내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어머니 병에 꿩고기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후원에 제단을 마련하였다. 밤낮으로 치성을 올린 지 10일 만에 우연히 암꿩 한마리가 부엌으로 기어 들어왔다. 유씨는 그 꿩을 잡아 시어머니에게 올려 병을 낫게 하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매우 애통해 하며 3년 내내 상복과 소식(小食)으 로 일관하였다. 또 시아버지가 병이 들자 수년 간 정성스레 간호했다. 그러나 병이 점 점 위중해지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여 한 달여를 더 살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