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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풍천임씨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풍천임씨(豊川任氏) 횡성공파(橫城公派) 청산공종회(靑山公宗會)의 사당입니다.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청주시로 가는 국도 36호선의 왼쪽에 자리한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아래행테의 마을회관 옆에 있다. 사묘는 문중에서 조상들의 위패..
[정의]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풍천임씨(豊川任氏) 횡성공파(橫城公派) 청산공종회(靑山公宗會)의 사당. [개설]사묘는 문중에서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므로, 문중이 번성한 곳에서는 최근까지 크게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사당에 제사의 기능뿐만 아..
임기백(任岐白, 1777~1803)은 조선시대 효자. 본관 풍천. 자 공성(公成), 호 영은(靈隱). 청원군 북이면 선암리 출신. 일찍이 7세 때 소학을 배우고 효 사상을 깨우친 이래, 일생 동안 뛰어난 효행으 로 만인의 사표가 되었다. 어린 시절, 험한 산 속에서 약초를 캐고 깊은 물에서 고기 를 낚아 병약한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공의 나이 15세 때 부친은 이미 병이 깊 었다.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않고 성심으로 간병했으나 아버지의 병은 크게 호전되지 않 았다. 공은 몇 차례나 손가락을 베어 수혈하니 부친은 마침내 회생하였다. 그 후에도 아버지를 지성으로 봉양한 결과 부친은 천수를 다하였다. 23세 때 부상(父喪)을 당하 였다. 산소 아래 초막을 짓고 3년간 거의 식음을 전폐하면서 못 다한 효..
임헌호 처 문화 유씨(任憲鎬妻 文化柳氏, 1854~1925) 문화 유씨는 청원군 북이면 선암리 1구 풍천임문(豊川任門)으로 시집 온 조선조 효 부이다. 통덕랑(通德郞) 임헌호(任憲鎬)의 아내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어머니 병에 꿩고기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후원에 제단을 마련하였다. 밤낮으로 치성을 올린 지 10일 만에 우연히 암꿩 한마리가 부엌으로 기어 들어왔다. 유씨는 그 꿩을 잡아 시어머니에게 올려 병을 낫게 하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매우 애통해 하며 3년 내내 상복과 소식(小食)으 로 일관하였다. 또 시아버지가 병이 들자 수년 간 정성스레 간호했다. 그러나 병이 점 점 위중해지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여 한 달여를 더 살게 하였다. ..
[정의] 조선 중기 충주수운판관·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계방(季方), 호는 금시당(今是堂). 할아버지는 판윤을 역임한 임설(任說),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를 역임한 임연(任兗), 어머니는 정유성의 딸이다.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에 태어난 임의백(任義伯)은 조선 예학의 태두인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630년(인조 8) 식년시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모두가 강화로 피난을 갔으나 임의백은 조선이 패할 것을 짐작하고 가족을 충청도로 피난시켜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후 음서로 제용감참봉이 되었고, 통천군수를 거쳐 충주의 수운판관(水運判官)이 되어 가흥창(현 충청북도 중원군 가금면 가흥리 남한강변에 있었던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