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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화양계곡 암각자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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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의 제9곡인 파곶에는 많은 암각자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송시열의 서재로 쓰였던 암서재와 함께 제5곡인 첨성대와 접하고 있는 계곡물가 그리고 파곶에는 이 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암벽에 각자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그들의 이름과 함께 암각자를 찾는 재미도 좋습니다.제1곡인 경천벽서 부터 제9곡인 파곶까지의 명명된 각자를 찾는것도 좋습니다. 파곶가의 암석에 옅게 새겨진 각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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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의 제7곡인 와룡암입니다. 길게 뻗은 암석이 마치 누워있는 용과 같다하여 와룡암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청천면 화양계곡 와룡암(靑川面 華陽溪谷 臥龍巖) (tistory.com) 청천면 화양계곡 와룡암(靑川面 華陽溪谷 臥龍巖) 궁석이 시내변에 옆으로 뻗혀 있어 전체 생감이 마치 용이 꿈틀 거리는 듯하고, 그 길이가 열길이나 되어 와룡암이다. 길이 만들어지면서 길 밑으로 바위가 묻혀있어 그 모습이 많이 변하였다. king6113.tistory.com 와룡암 - 임상주 - 維彼臥龍巖 저 누워 있는 와룡암만은 若垺乘風雲 풍운 타고 오르는 것 같네. 宛在水中央 완연히 물 한가운데 있는데 蒼痕背成文 푸른 물결이 얼룩문이 되었네. 知是南陽翁 알겠도다, 제갈공명이 變化爲此石 변화해 이 암석이 된 것을. 平生興復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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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의 시중 이곳 파곶巴谷을 배경으로 쓴 시입니다. 「파곶(巴谷)」 水作靑龍去 물은 청룡처럼 흘러가고 人從翠壁行 사람은 푸른 벼랑으로 다닌다. 武夷千載事 무이 천년의 일은 今日此分明 오늘도 이렇듯 분명하구나. 청천면 화양계곡 백석(靑川面 華陽溪谷 白石) (tistory.com) 청천면 화양계곡 백석(靑川面 華陽溪谷 白石) 화양구곡의 제 9경인 파천이다.다른말로는 백석(白石)이라고도 불리운다. 넒은 평평한 백석위에 흐르는 물이 경관을 더헤 주고 있다.용의 비늘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king6113.tistory.com 가는 날은 비가 온후라 그런지 계곡에는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흐르는 물소리가 참 좋았습니다.흐르는 계곡사이에 흰바위가 편편하게 자리하고 있어 이곳 파곶을 다른 말로는 백석白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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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현元世顯은 원주인으로 조선후기의 무관입니다. 순조27년(1827년)정해년에 증광시에 합격했습니다.1856년 전라좌도수군 절도사를 지냈으며 1857년에는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냈습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낼 때인 기미년(己未年.1859년) 봄에 아들인 장한長漢과 지인 원석일元錫一과 함께 이곳을 찾아 이름을 각자한것입니다. 화양구곡의 제9곡인 파천가의 암벽에 이름을 각자 하였습니다.각자일은 기미己未년(1859년) 봄입니다. 승정원일기 2597책 (탈초본 124책) 철종 8년 11월 20일 정유 27/35 기사 1857년 咸豊(淸/文宗) 7년〈○〉 再政。 兵批啓曰, 忠淸兵使, 今當差出, 而擬望之人乏少, 他道水使竝擬, 何如? 傳曰, 允。 以徐珩淳爲都摠經歷, 朴儀漢爲文兼, 元世顯爲忠淸兵使, 金錫範爲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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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사 구병훈은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충청수사로 제수되었음을 알수있다. 승정원일기 1149책 (탈초본 64책) 영조 33년 10월 28일 정해 12/13 기사 1757년 乾隆(淸/高宗) 22년 ○ 兵批判書鄭翬良進, 參判趙載洪進, 參議李萬宗進, 參知李昌儒進, 左副承旨安𠍱進。以金光澤爲蝟島僉使, 李命峻爲全羅右水使, 金聖遇爲全羅兵使, 沈應昌爲訓鍊主簿, 具秉勳爲忠淸水使, 李喜集爲城津僉使, 절도사 정충달은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충청병사에 제수되었다. 승정원일기 1801책 (탈초본 95책) 정조 22년 12월 1일 경인 16/26 기사 1798년 嘉慶(淸/仁宗) 3년 ○ 兵曹口傳政事, 以鄭忠達爲忠淸兵使。 정충달이 충청병사시절 아들들과 함께 기미9월에 이곳 화양구곡을 찾았다가 각자한것으로 추측됩니다. 정충달을 인터넷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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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가 충청도관찰사 시절 아들인 낙증과 함께 이곳에 들려 각자한 것입니다.후세에 각자 한것을 없앤다고 바위에 시멘트를 발라놓아 더 보기가 안좋습니다. 후세에 누군가가 시멘트로 발라놓은 위에 다시 각자한 듯 합니다. 화양구곡중 9곡인 파천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려(1675-1728)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용여(用汝), 호는 설재(雪齋). 김민효(金敏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재현(金載顯)이고, 아버지는 신령현감(新寧縣監) 김윤호(金胤豪)이며, 어머니는 금성이씨로 돈녕부도정 이핵(李翮)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사마시에 합격하고, 1713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시강원설서·병조좌랑·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사헌부집의 등을 거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