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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문촌리 칠원윤씨효열각(甘谷面 文村里 漆原尹氏孝烈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감곡면 문촌리 칠원윤씨효열각(甘谷面 文村里 漆原尹氏孝烈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2. 15. 09:25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후기의 정려이다

윤기손,윤기진 형제 효자문은 윤기손(尹起巽)·윤기진(尹起震)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효자문으로, 형제의 효자문과 윤득성청풍김씨(淸風金氏)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청풍김씨 열녀문이 같이 있다. 칠원윤문 효열각(漆原尹門 孝烈閣) 또는 칠원윤씨 효열각(漆原尹氏 孝烈閣)이고도 한다.

 

 

문촌리는 본래 충주군 거곡면 지역인데 조선 고종 광부 10년(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오리, 신촌, 장평리, 판요리, 문암리를 병합하여 문암(文岩)의 문(文)자와 신촌(新村)의 촌(村)자를 따서 문촌리(文村里)라 하여 감곡면에 편입되었다. 『음성읍지』의 기록을 보면 문촌리, 상오리, 신촌, 장평, 판요, 문암리가 병합된 것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위치상 위에 있는 각 리 들이 과거 오갑리 지역의 일부임을 알 수 있는데,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당시 타리에 비해 두세 배 정도 규모가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문촌리오갑리의 일부가 분할된 후 다시 폐합되는 과정에서 단일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효자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목조기와 맞배지붕 형태이다. 기단은 화강암 대리석으로 2단을 쌓고, 그 위에 원형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4면은 홍살로 처리하였으며 하방(下枋)과 중방(中枋)을 시설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측면의 박공판(牔栱板)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여 효자문을 보호하고 있다.

윤기손 효자문의 내용은 ‘효자절충장군겸지중추부사윤기손지문상지이십일년신사이월일명정(孝子折衝將軍兼知中樞府事尹起巽之門上之二十一年辛巳二月日命旌)‘이다. 윤기진 효자문의 내용은 ‘효자학생윤기진지문상지이십일년신사이월일명정(孝子學生尹起震之門上之二十一年辛巳二月日命旌)’ 이다. 청풍김씨 열녀문의 내용은 ‘열녀고학생윤득성처유인청풍김씨지문상지이십오년을유십일월일명정(烈女故學生尹得聖妻孺人淸風金氏之門上之二十五年乙酉十一月日命旌)’이다.

 

 

조선 후기 정조대에 감곡면 문촌리에 살던 윤기손윤기진 형제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홀어머니 원씨가 병환으로 자리에 드러눕자 형제는 밤낮없이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하자 형제는 꿩을 잡으러 산중을 헤맸으나 한여름에 맨손으로 꿩을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잡을 수가 없자, 형제는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하늘에 백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형제의 지극한 효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독수리가 꿩 한 마리를 형제 앞에 떨어뜨리고 날아갔다. 형제는 하늘에 감사하며 꿩을 고아서 어머니께 드렸는데 거짓말같이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 그 후 어머니 원씨가 또 병환이 들었다. 의원은 이번에는 아무래도 소생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형제는 어머니 대신 죽을 각오를 하고 왼손가락을 모두 단지(斷指)하여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렸다. 그리하여 다행히 어머니는 소생하였으나 동생 윤기진은 열아홉의 나이에 그만 죽고 말았다. 윤기진의 아내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따라 죽으려다가 어린 자식을 양육하고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할 결심으로 살아서, 훗날 근동에서는 다시없는 효부로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전한다.

 

 

 

청풍김씨는 조선시대 음성군에 열녀로서

김언희(金彦熙)의 딸로, 19세에 남편 윤득성(尹得聖)이 병을 얻자 정성껏 간호하였다. 위급한 지경에 이르러 천지신명께 남편 대신 죽기를 빌었으나 끝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상을 마친 후 독약을 먹고 자결하려 하였으나 집안사람에게 발견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유복자로 딸을 낳은 후 음식에 입을 대지 않다가 이틀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조(英祖) 때 열녀로 포상되고 정조(正朝) 때 열녀 정문을 세우도록 하였다. 정려는 윤기손·윤기진 형제 효자문과 함께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으며, 내용은 '열녀고학생윤득성처유인청풍김씨지문상지이십오년을유십일월일명정(烈女故學生尹得聖妻孺人淸風金氏之門上之二十五年乙酉十日月日命旌)'이다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