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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왕읍 무극리 민치상영세불망비(金旺邑 無極里 閔致庠 永世不忘碑) 본문
금왕읍 읍사무소 안에 위치하고있다.
조선 후기 문신 민치상(閔致庠)[1825~1888]의 치적을 기리는 비(碑)이다.
음성군내에는 민치상의 영세불망비가 2기 존재한다
한기는 음성향교앞에 있는 선정비군에 존재하며 한기는 금왕읍사무소안 정원에 있다
1870년(고종 7)에 세운 비는 음성향교 앞에 있고, 1873년(고종 10)에 세운 비는 금왕읍사무소 안에 있다.
민치상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경양(景養), 호는 하당(荷堂), 본관은 여흥이다.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1) 홍문관수찬에 등용되었고 사은겸세폐사(謝恩兼歲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철종이 죽은 뒤 영의정 김좌근(金佐根)과 함께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전교(傳敎)를 받들고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고종]을 잠저(潛邸)로부터 궁궐까지 봉영(奉迎), 시위(侍衛)하였다. 후에
이조참판을 거쳐, 공충도관찰사(公忠道觀察使), 형조판서, 예조판서, 공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향교 앞의 비는 비신(碑身)의 높이 129㎝이며, 앞면의 폭이 52㎝, 측면의 폭이 16㎝이다. 금왕읍의 비는 비신(碑身)의 높이가 158㎝, 앞면의 폭 52㎝, 측면의
폭 28㎝이다.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52㎝, 앞면 92㎝, 측면 68㎝이고, 방부(方趺)는 높이 2㎝, 전면 90㎝, 측면
50㎝이다.
향교 앞의 불망비에는 ‘도순찰사민공치상영세불망비(都巡察使閔公致庠永世不忘碑)’라 쓰여 있다. 금왕읍의 비는 ‘관찰사민공치상영세불망비(觀察使閔公致庠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으며, 뒷면에는 ‘고을의 쌀을 내고 들이는 것으로 읍민들을 다스려 은택을 베풀었고, 편전의 근시로 사직에 정성을 다하니 훌륭한 명성이 세상에
전해진다네(俾邑糶糴 治民惠澤 輸社便近 傳世令聞)’ 라는 송시(頌詩)를 기록하고 있다.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에 있는 민치상 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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