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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면 연하리 진용학공적비(老隱面 蓮河里 陳庸鶴功積碑) 본문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위치한 진용학의 공덕비이다.
연화마을 앞들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든 진용학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연하리 주민들이 1975년 8월 17일 세운 비이다.
노은면은 1630년경 영조 때에 청안현감을 지낸 정경연(鄭慶演)[1604~1666]이 산림이 우거진 이 땅에 들어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노모를 봉양하며 은거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정경연이 살던 곳을 노은고개[老隱峴], 또는 논고개[老峴]라 불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면의 이름도 노은현면(老隱峴面) 또는 노은면(老隱面)이라 하였다.
비 앞면에 8×8㎝ 크기의 해서체로 ‘여양진공용학공적비(驪陽陳公用鶴功績碑)’라 새겼고, 뒷면에는 3×3㎝의 크기로 “연화(蓮花) 앞들 오만평(五萬坪)의 황무지(荒蕪地)를 개간(開墾)하여 옥토(沃土)로 기면모(其面貌)를 바꾸었다. 서기(西紀) 1975년 8월 17일 목리인 일동(一同) 근정”이라 음기하였다.
비좌개석의 형태로 지붕돌은 73×49×46㎝이며, 비신은 44.5×19×120㎝이고, 대석은 62×43×5㎝의 크기이다.
갑신년(1944)장마로 한포천일대가 부곡천 보련천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쌓여 자갈밭 황무지로 변하였다.
황무지에는 제대로 된 농토를 마련할수 없었던 주민들은 돌을 제거하고 밭을 만드렁 호밀같은 곡식을 심는 밭농사를 지었다.
너무나 엄청남 변화에 자력으로 논밭을 복구할 생각을 못하고 있을때 진용학씨가 각종 장비를 들여 개간을 하기 시작하였다.
개간작업은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주민들과 진용학씨는 6:4의 비율로 이익을 분배하였다.
이에 몽리인(蒙利人)일동은 고마운 뜻을 기려 공적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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