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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면 조천리 청화사(淸安面 釣川里 淸華祠)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안면 조천리 청화사(淸安面 釣川里 淸華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4. 11. 09:38

 

괴산군 청안면 조천리에 위치하고 있는 인동장씨의 사당이다.

 

충북에는 인동장씨의 세거지로 조천리와 더불어 청원군 가산리에 세거하는 대성이였다.

인동(仁同)은 경상북도 구미시(龜尾市)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신라 초에는 사동화현(斯同火縣)·이동혜현(爾同兮縣)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수동현(壽同縣)으로 고쳤다. 경덕왕 때 다시 인동현(仁同縣)으로 고치고 별호를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상주목(尙州牧) 경산도호부(京山都護府: 星州)의 속현(屬縣)으로 병합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감무(監務)를 두고 약목현(若木縣)을 속현으로 하였다. 1413년(태종)에 인동현에 현감(縣監)을 두었다가, 1604년(선조 37)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인동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인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이 폐지되었고 일부 지역은 인동면이 되었다.

 

 

 

인동장씨(仁同張氏)의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했고, 그의 아들 장선(張善)도 고려 문종 때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을 지냈다. 여헌(旅軒) 장현광의 유록에 의하면, "고려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공(장금용)을 시조로 모시는 것은 그 분이 선대를 알 수 있는 최초의 선조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조상은 몇 대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조상이 이곳 인동(옥산) 땅에 거주하신 내력을 살펴보면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이십대 뿐이다."고 한다. 인동장씨는 장금용 이래로 경상북도 칠곡(漆谷)의 인동(仁同)을 관향으로 삼아 세거해 왔으나 그 뒤의 계대(繼代)를 실전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장금용의 13세손인 장백(張伯)은 고려 우왕 때 태상경(太常卿)으로 문하시중도첨의밀직사(門下侍中都僉議密直使)를 역임하였는데, 후에 좌리공신(佐理功臣)에 녹훈되어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졌다. 따라서 후손들은 장백을 중조로 삼아 옥산을 본관으로 하였는데 조선말기 옥산이 인동(仁同)으로 바뀜에 따라 본관을 인동으로 고쳤는데, 예전 그대로 옥산을 본관으로 쓰는 후손도 있다.[네이버]

 

 

청안면 청용리를 지나 조천리에 접어들면 조천리 마을입구에 이인좌의 난때 의병활동을 하였던 장담의 충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조천리는 1-4구까지 나뉘여 있으며 상당한 면적의 동네이다

청화사는 조천리 마을입구를 지나면서 좌측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청화사는 인동 장씨 시제를 지내는 장소이다
동네 주민들에 의하면 매년 음력 10월 첫 번째 공휴일에 시제를 지낸다고 한다

현재 청화사 뒷쪽으로 농공단지 개발계획이 있다고 한다

청안면에 옛 동헌 2채 중 한 채가 면사무소 건립으로 인해 허물어지게 되자, 마을에서 일부를 가져다 청화사를 짓는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현재 청화사는 건립한지 약 20년 가량 되였다고 한다.

 

 

 

청화사를 바라보며 좌우측으로는 동ㄹ사자상과 인동장씨사적비가 자리하고 있다.

모습으로 보아 모두 근래에 제작 설치된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