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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장록리 김계열송덕비(周德邑 長彔里 金啓烈頌德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읍 장록리 김계열송덕비(周德邑 長彔里 金啓烈頌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10. 8. 14:04

 

 

 

 

장록리는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장록개 또는 장록포(長彔浦)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덕면(德面)의 천서리(川西里) 지역으로 충주관아로부터 북쪽으로 40리 거리에 위치해 있고, .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초처리(草處里), 못안[池內], 새터의 일부를 병합하여 장록리라 칭하고 주덕면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원래 이 마을은 남쪽 웃다락보에 있었으나 1944년의 대홍수로 수해를 크게 입어 이후 경지 정리를 하고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평야 지대로서 미곡을 주로 생산하며, 뒷산의 구릉에는 밤나무단지와 사과, 복숭아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에는 대규모의 미곡정미소가 있다. 1999년에 전국 쌀 생산 최우수단지로 장록단지가 선정되어 대통령상을 받았다. 원장록 대동계, 지내 호상단이 있으며, 봉천에는 벼 백가마계가 있으며, 농기계 보관 창고, 순환식 곡물 건조기, 봉천정미소가 있다.

 

 

 

김계열 송덕비는 2005년 원장록주민일동이 세운것으로 동네에 보건진료소를 지을때 보건진료소의 터를 희사하는등 물심양면으로 장록리 발전을 위헤 힘쓴 공로를 인정하여 송덕비를 세웠다. 

 

송덕비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선생의 존함은 김계열이시며 관향은 경주로 시조는 신라시조 김알지왕의 먼 후예로 1930년 5월 3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궁촌리에서 출생하셨다. 선생은 한일합방 후 일제 강점 하에 온갖 탄압 속에서 성장하여 1945년 해방되던 해에 문막 보통학교를 졸업하시고 이 지역의 자문위원과 농협 기초설립위원을 비롯하여 문막농업협동조합장을 역임후 지역 번영 회장 및 고문 등 지역사회 발전에 타에 앞장서 헌신 봉사한 바 있어 덕망이 높으셨던 훌륭한 분이셨다. 특히나 선대조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시던 곳이 바로 이곳 충주시 주덕읍 장록리이다. 이 곳은 주덕읍 북부지역의 거의 중심 요지로 위치되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보건진료소 건립에 있어 부지확보가 어려웠던 바 마침 선생께서 사유토지를 희사하신 미덕의 자취를 남기시고 1985년 8월20일 향년 55세의 아까운 연세로 일생을 마치셨다. 묘소는 출생지 후산 선영하에 모셔졌다. 선생께서는 위와 같이 향리는 물론이려니와 멀리 타향까지도 선대조상을 그리며 이 마을을 위하여 후덕을 남기셨기에지역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여 마을 주민들의 총의로 그 갸륵하신 공덕을 기리기 위해그 마음을 이 비에 담아 선생의 송덕비를 세우다.  서기 2005년 4월  주덕읍 장록리 원장록 주민 일동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