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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당우리 이건학영세기념비(周德邑 堂隅里 李建學永世紀念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읍 당우리 이건학영세기념비(周德邑 堂隅里 李建學永世紀念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10. 12. 07:17

 

당우리 초입을 들어서며  굴다리를 지나면 넓게 펼쳐진 들판이 보인다.참 풍요로운 마을이구나 하는 느낌이 가슴속으로 밀려든다.산신당 모롱이에 있어 당우리(堂隅里)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또한 ‘자급이 가능한 넓은 들과 풍부한 용수를 바탕으로 의연하게 터 잡은 마을’이라고도 해석한다

 

 

처음 만나는 사거리가 원당사거리이다. 원당사거리에서 유동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농협창고옆에 비석이 하나 서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조합장전주이공건학씨영세기념비(組合長全州李公建學氏永世紀念碑)라고 음각되여 있다.

 

 

 

이건학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지방행정가이다.

 

이건학은 버들골사립학교에 교사로 3년여 근무한 후 고시(考試)에 합격하여 청주도청강습소에서 1년 연수를 마치고 충청북도 중원군 주덕면사무소 권업주임(勸業主任, 지금의 산업계장)을 역임하였다. 해방 직후 제2대 주덕면장으로 근무하면서 대소원역을 주덕역으로 개칭하고, 충청북도 중원군 이류면 대소리 소재의 금융조합을 주덕면으로, 대소원에 위치한 우체국을 주덕으로 각각 이전하였다. 공직에서 사퇴하고 수리조합,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당우리농업협동조합을 최우수농협으로 만들어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이 비석은 원당우리에서 유동으로 가는 길 옆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서면 길을 향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관목이 서 있다. 2단의 콘크리트 대석 위에 화강암 대석을 놓고 그위에 검은색조의 비신을 세웠는데 비신은 너비 44cm, 두께 21cm, 높이 130cm 크기이다. 옥개석은 화강암으로 다듬어 비신 위에 올려놓았다. 비문에 건립연대를 병오 8월이라 기록하였는데,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1966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면에는 큰 글자를 종으로 ‘조합장전주이공건학씨영세기념비(組合長全州李公建學氏永世紀念碑)’라 음각하였다.
뒷면에는 공성고결 학이지원 임사상심 소무상실 수분정제 지족가락 기어재상 총무구득 재직다년 공사득중 수신전긍 언행일정 거관치가 근검위상 교인유예 흔연위경 구인이혜 보우이인 창건농협 극력진성 교인생재 각자근농 다년권업 가급인족 조원일치 사개순성 교접상하 무처부당 불탄구로 종신모충 우사탄연 상유여유 포상항다 일향뢰공 오호통재 시하인사 시운불리 명도무사 신명불우 거손관사 년과반백 하기도서 외외방명 가전후세 유아첨원 통한무애 기은여하 여산약해 미적최다 실난장거 구송수쾌 후무소자 구진미침 수립단갈
(公性高潔 學而智遠 臨事詳審 小無傷失 守分整齊 知足可樂 其於財上 摠無苟得 在職多年 公私得中 修身戰兢 言行一正 去官治家 勤儉爲常 交人有禮

欣然爲敬 救人以惠 輔友以仁 刱建農協 極力盡誠 敎人生財 各自勤農 多年勸業 家給人足 組員一致 事皆順成 交接上下 無處不當 不憚劬勞 終身謀忠

遇事坦然 常有餘裕 褒賞恒多 一鄕賴功 嗚呼痛哉 是何人事 時運不利 命道無私 神明不佑 遽損館舍 年過半百 何其逃逝 嵬嵬芳名 可傳後世 惟我僉員
慟恨無涯 其恩如何 如山若海 美蹟最多 實難杖擧 口誦雖快 後無所資 救陳微忱 竪立短碣)
우측면에는 병오팔월 일(丙午八月 日) 당우리농업협동조합원일동건립(堂隅里農業協同組合員一同建立)이라 각자하였다.

 

 

 

1966년 8월 당우리농업협동조합 조합원들에 의해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 원당사거리 경로당에서 100m거리의 농협창고 옆에 이건학기념비가 세워졌다.비는 높이 1.6m, 폭 45㎝, 두께 20㎝이며 검은 대리석에 갓이 씌워져 있다.주변은 마을주민들에 의하여 잘 정리되여 있다. 

 

 

 

 

 

당우리는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당우(堂隅)[일명 당모루]·석우(石隅)[일명 돌모루]·유동(柳洞)[일명 버들골]·신대리(新垈里)와 신니면 수청동(水淸洞)[일명 수청골] 일부를 병합하여 당우리라 하고 충주군 주덕면에 편입하였다. 1956년 충주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중원군 주덕면 당우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되어 충주시 주덕면 당우리가 되었다. 1995년 3월 주덕면이 주덕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가 되었다.

마을의 중심이 되는 당우마을, 석우마을, 유동마을이 생긴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영남대로가 이 지역을 통과함에 따라 형성된 주막거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여겨진다. 한국전쟁을 겪고 충주댐
완공으로 일부 지역이 수몰될 때 많은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현재 당우리의 중심은 원당우마을이지만 조선시대 호구단자(戶口單子)를 보면 유동마을이 중심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