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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읍 심원리 승탑(永同邑 深源里 僧塔) 본문
이 승탑은 연꽃 봉우리 모양의 승탑이다. 넓이 120cm, 높이 60cm, 지름 23cm의 동그란 대석에 연꽃을 조각하였고, 그 위에 부도를 안치한 특이한 모양의 부도이다. 부도는 직경 60cm, 총 높이는 100cm로, 섬세한 조각이 돋보인다. 이 부도는 원래 심원리 예전마을 부도골에 있던 것을 향토 민속전시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긴 것이다.
우리 예전마을은 예전, 대금 2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멀리 동남쪽 백마산에서 우선용으로 뻗어 나온 무선봉 아래 다섯 봉우리들이 마을앞쪽에 노적봉같이 아름답게 앉아 있고 좌선용은 솔티재를 거쳐 마을 뒤쪽으로 들어와 동네를 고즈넉이 안아주는 산자수명한 마을로 남쪽의 탑선리(塔仙里)와 북쪽에서 흐르는 초강천 사이에 넓은 들을 이루고 있으며 본래는 영동현 동동면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동면 예전과 탑선리로 나뉘어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예전과 탑선동을 병합하여 심원리라 함과 동시에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이와 같이 심원리는 예전리와 탑선리등 2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 마을은 예전리라 불리고 있다.
본래 예전마을 앞편에 부도성골이라 불리는 골짜기에는 옛 사지(寺址)가 있으며 지금도 기와 조각 등 당시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연꽃을 음각한 종(鍾)형태의 부도가 있었으나 지금은 영동읍 난계국악당 옆 유물전시관으로 옮겨져 있으며 지방문화재 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 사지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며 주위 경작지는 불례(佛禮)를 드리는 밭이라 하여 마을명도 예전마을(禮田)이라 했다고 전한다.
본래 이 마을은 사육신(死六臣)의 수장격으로 인정받고 있는 백촌 김문기(金文起) 공(公)의 신원복관 사업을 이루어낸 백촌 공의 11대손 김녕 김씨 금은공(錦隱公)의 子 김익형(金益亨)이 약 250여 년 전 처음 이주하여 마을을 열었으며 김씨(金氏) 대성촌을 이뤄왔다. 그간 홍씨(洪氏), 황씨(黃氏), 박씨(朴氏), 최씨(崔氏), 강씨(姜氏)등이 같이 거주하여 왔으며 지금은 김녕 김씨가 거주하는 곳에 밀양 손씨가 150년 전에, 김해 김씨가 100여 년 전에 이주하여 사이좋게 어울려 살고 있다.
그러던 중 2002년 8월 31일 오후 6시경 태풍 루사로 인한 집중호우로 초강천이 범람하여 우리 마을 주택 33동이 전부 수몰되고 93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사망 2명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마을 초유의 역경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해복구를 위한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구호품 및 성금 등 온정의 물결이 답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행정당국에서도 군수, 읍장등 전 공무원이 불철주야 수해복구에 전심전력으로 협조함과 동시에 18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6,204평의 부락을 재건하게 된 것이다.
특히 안전하고 아름다운 전원마을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위치보다 평균 3m정도를 높여 성토한 뒤 마을 주택을 신축하여 상습침수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2002년 9월말부터 2003년 7월 30일까지 진행된 마을 재건사업으로 우리 예전마을은 전국의 어느 마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최고의 전원마을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에 우리 주민들은 예전마을이 보여준 역경극복의 정신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재건사업에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를 하여주신 행정당국 및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예전마을 주민들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충(忠), 효(孝), 예(禮)의 미풍양속을 잘 지키고 근검 협동정신을 솔선 실천하여 살기 좋고 인심 좋은 선진 도덕 문화마을로 영구히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전 주민들의 뜻을 담아 이 비(碑)를 세운다.[예전마을 유래비]
영동 심원리 사지 (永同 深源里 寺址)는 탑산리 마을의 동남방 약 1km 떨어진 산록에 있으며 와편이 산재하고 높이 약 2m의 2층방탑과 불상 높이 약 50cm의 좌상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전부 경작지로 변하고 부도 묘양의 석탑재 중 옥개석 하나가 남아있다. 이 부근을 팔만구암자(八萬九庵子)라고 부르는 것으로 볼 때 대찰이 있었던 것을 짐작한다. [전국문화유적총람]
그 석탑재와 옥개석이 난계국악당 옆 유물전시관으로 옮겨져 지방문화재 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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