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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면 신안리석불(秋風嶺面 新安里石佛)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영동군(永同郡)

추풍령면 신안리석불(秋風嶺面 新安里石佛)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3. 20. 11:23

 

추풍령면은 남쪽은 매곡면(梅谷面), 경북 김천시 봉산면(鳳山面), 동쪽은 경북 김천시 어모면(禦侮面), 북쪽은 경북 상주시 모동면(牟東面)과 공성면(功城面), 서쪽은 황간면(黃澗面)에 접한다. 1991년 7월 1일 황금면(黃金面)에서 개칭되었다. 소백산맥 지역에 속하여 북부의 지장산(芝庄山:772m)·학무산(鶴舞山: 678m), 남부의 눌의산(訥誼山:743m) 등 험준한 산지가 면의 거의 전역을 차지하고, 소백산지를 횡단하는 추풍령(秋風嶺:221m)이 동서로 가로놓여 있다.

경부선 연변의 좁은 농경지를 따라 취락이 분포되어 있으며, 주산업은 농업이지만 농작물 산출량은 많지 않다. 주요 농작물은 쌀·보리·콩류 및 고추·잎담배 등이고, 양잠도 활발하다. 경부선 구간 중 가장 고도가 높은 추풍령을 넘는 철도·고속도로·국도가 면을 동서로 횡단하고 있어 교통의 요지를 이룬다.

문화재로는 장지현장군순절비 및 전적지(張智賢將軍殉節碑-戰蹟地:충북기념물 96), 죽전리(竹田里) 절터, 신안리(新安里) 불상, 지봉리(池鳳里) 불상·고분 등이 있다.

 

 

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신안리는 본래 경상도 금산현 지역으로 1896년 경북 금산군 황금소면에 속하였고 석불의 은덕으로 동리가 편안하다 하여 신안리라 하였다. 1906년 황간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방현리 사기점 짐곡리 반수리를 병합하여 영동군 황금면 신안리라 칭하다가 1982년 상신안리 하신안리로 분구되었다. 우리 마을은 반고개라 칭하였는데 조선이 개국하여 서울 한성(漢城)으로 옮기게 되어 부산에서 한성까지 꼭 절반이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고가는 과객들이 반고개의 유래를 되새기며 술 한 잔 걸치며 쉬어가던 곳이라 전국 어느 주막보다도 활기가 돌았다한다. 반고개 서북방 약 90m 지점에 입불상이 있어 부락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음력 1월 14일이면 부락 수호와 가정의 덕복(德福)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우리 마을은 벼농사보다 사과 포도 등 과수농업과 축산(돼지)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구기자 등 특용작물도 재배하여 농촌의 활로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 20 호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입상(石佛立像)은 반고개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매년 음력 1월 14일에 마을 수호와 가정의 덕복(德福)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불상의 전체높이는 2.27m, 어깨폭은 80㎝ 이다.

 

 

 

신안리석불입상은 불두는 후보한것으로 보이며 원래의 불두인지는 확인할수가 없다.

석질의 상태나 빛깔 등으로 보아 따로 뒤에 후보한것으로 보인다.

 

 

 

 

지리상으로 신안리 사지는 학무산의 동북쪽 끝자락의 반 고개에 위치한다. 사지주변의 지형은 학무산(해발 678m)을 주산으로 하며, 산의 동북쪽 완만한 자연 경사면을 정지하여 터를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사지는 밭과 과수원으로 인한 훼손이 심해 정확한 사지의 규모와 건물의 흔적을 지표상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사역 초입에 영동군 향토유적 제20호로 지정된 신안리 석불입상만이 보호각안에 봉안 되어 있다. 불상은 보관을 쓴 보살상의 형태로 조각되었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입상의 하부가 매몰된 채 전각에 봉안되어 있는 보살상의 현재 높이는 2.27m, 어깨폭은 80㎝ 이다.
사찰은 폐허가 되어 그 형태조차 가늠하기 힘들고 남아있는 석불입상도 현재는 이마을의 수호신으로 변화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신안리사지에대한 고문헌자료는확인할수없지만『, 문화재총람상권』충청북도영동군편‘반현부락(半峴部落)의 서북방 약 90m 지점에 위치한 입불상(入佛像)으로 본부락(本部落)(반고개동)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시고 있다. 3년에 한번씩 춘추에길일을 택하며 부락수호와 가정의 복덕을 기원하기 위하여 제사를 올리며 매년 7월 백중에는 이곳에서 씨름대회를 한다. 불상(佛像)은 보호각에 봉안(奉安)되었으며 둥근 광배(光背)와 우수(右手)는 항마촉지(降魔觸地)를 하고 있다. 불각(佛閣)은 목조와가(木造瓦家) 약 3평으로 퇴락되어 있고 불상(佛像)은 전체 높이 1.3m, 어깨 폭 80cm이다.’라는 석불입상에 관한 기록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