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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원 독립만세운동유적비(大召院 獨立萬歲 遺蹟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대소원 독립만세운동유적비(大召院 獨立萬歲 遺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4. 6. 21:53

 

 

 

 

[정의]
1930년 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대소리(大召里)에서 일어난 학생 시위운동.

[역사적 배경]
1929년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기차 통학을 하던 한국일본 중학생 사이의 싸움이 도화선이 되어 광주의 2,000여 명의 학생이 항일 투쟁을 벌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이후 전국적인 학생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경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전해지자 충주 지역에서는 1930년 2월 7일 대소리 장날에 대소원보통학교 학생 30여 명이 장터에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격문을 뿌리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결과]
경찰 서장이 직접 지휘하여 현장으로 달려와 주동 학생을 수색한 끝에 황준길(黃俊吉, 17), 성낙일(成樂一, 19), 조태국(趙泰國, 16), 임병학(林炳學, 21), 김병수(金秉壽, 18), 오준학(吳俊學, 19), 정만형(鄭萬亨, 17), 도선봉(都先鳳, 17), 박운양(朴雲陽, 14), 박기현(朴基鉉, 14)이 구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민족 차별의 식민지 지배를 저항하여 한국의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일으킨 시위운동으로서, 1930년대 충주 지역에서 발생한 학생들의 독립운동으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