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덕산면 기전리 이영남장군묘소(德山面 機田里 李英南將軍墓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덕산면 기전리 이영남장군묘소(德山面 機田里 李英南將軍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9. 25. 12:37

날씨기 참 좋다.

내려쬐는 햇볕은 가을의 풍성함을 기다리는 농부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가을의 햇살은 여러가지 곡식들과 과수들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온 들판에 가득하다.

 

진천군을 답사하면서 조금은 소홀했던 진천의 북부지방을 살펴보기로 했다

덕산면 기전리에 있는 이영남 장군의 묘소를 찾았다.

 

기전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기지리(機池里)의 ‘기(機)’자와 화전리(花田里)의 ‘전(田)’자를 따서 기전리(機田里)라 하였다.

기지는 선옥 남쪽에 있는 마을로, 1914년 이전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틈미실 또는 트미실로 나오며, 기지(機池)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되어 있다. 마을이 마치 베틀 모양과 같고, 또 마을 가운데 못이 있어서 베틀 ‘기(機)’자와 못 ‘지(池)’자를 써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화전은 선옥 남쪽에 있는 마을로, 큰 꽃밭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2008년 충청북도 기념물 144호로 지정 관리되고있다.

 

 

이영남은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다.


본관은 양성(陽城)이며. 자는 사수(士秀). 할아버지는 음죽현감(陰竹縣監)을 지낸 이계보(李季寶)이며, 아버지는 창신교위(彰信校尉)를 역임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영남(李英男)[1563~1598]은 1563년(명종 18) 지금의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22세인 1584년(선조 17) 별시(別試) 무과에서 병과(丙科) 제163위(位)로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경상우수영 휘하의 율포권관(栗浦權管)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전라좌수군에 연합 지원 함대의 구성을 요청하는 청병사절(請兵使節)로 선발되어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일을 성사시켰다. 당시 그가 청병사절로 선발된 이유는 일찍이 이순신 장군과 구연(舊緣)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의 연합 함대가 구성된 이후에는 소비포권관(所非浦權管)으로 자리를 옮겨 1592년 5월부터 1595년 4월까지 3년간 근무하였다. 뒤이어 북방으로 전직되어 1595년(선조 28) 7월부터 12월까지 약 6개월간 강계부판관(江界府判官)을 역임하였다. 이후 다시 남방의 수군(水軍)으로 돌아와 율포만호(栗浦萬戶)·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를 역임하면서 해전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가리포첨사로 있던 1598년(선조 31) 11월 18일 일본군과의 최후의 해전이었던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보좌하여 역전(力戰)하다가 탄환에 맞아 향년 36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묘소는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 산88-4번지에 있다.


1605년(선조 38) 절충장군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었으며, 1621년(광해군 13)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960년 8월 진천군 유도회(儒道會)에서 충절을 기려 진천군 읍내리 삼수초등학교 정문 앞에 현충비를 세웠다. 또한 순국 당시 통제영이 있던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의 충무사(忠武祠)에 이순신 장군을 주벽으로 하여 배향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이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전사한 뒤 조방장으로 명량해전에서 승리하였으며, 1598년 가리포첨사겸조방장(加里浦僉使兼助防長)으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고향인 덕산면 기전리로 운구하여 장례를 치렀다. 1605년 무훈원종일등공신에 봉해졌고, 숙종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덕산면 기전리 기자마을 갈현산아래 위치하고 있다.

묘소옆에는 근간에 보수를 한 듯한 사당인 충용사가 자리하고 있다.

 

 

 

 

 

 

 

묘소는 원형의 봉분으로 직경 약 600㎝, 높이 약 240㎝로써 둘레를 십이지신상의 호석으로 조성하였다. 묘소 앞쪽에 상석 및 계체석, 정면 좌·우측으로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기씩 있으며, 우측에 이영남 장군 사적비가 1983년에 세워졌다. 이 석물들의 상태는 양호하나 근래에 건립·조성된 것이다. 좌측에는 평소 이영남 장군이 아끼던 말의 무덤인 용마총이 자리하고 있다. 진천 이영남 장군 묘소 상단으로는 이영남 장군의 부모인 이사종과 광주진씨 묘소 쌍분 각 1기 및 묘비와 조부 이극인의 묘소 및 묘비 1기가 위치하고 있다.


 

 

묘소에 있는 이영남 장군 사적비는 1983년 10월 9일 순국 385주년을 맞아 건립된 것이다.

진천 이영남 장군 묘소는 2008년 8월 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으며, 양성이씨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