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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혜원면 회죽리 수양사(廣惠院面 會竹里 首陽祠)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광혜원면 회죽리 수양사(廣惠院面 會竹里 首陽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9. 30. 13:41

 

수양사는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해주오씨 문중의 사당이다.

중국 송나라 때 대학사(大學士)인 오인유(吳仁裕)는 984년(성종 3)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하였는데, 오인유가 해주(海州)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그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本貫)으로 삼았다. 수양사(首陽祠)는 오인유를 비롯한 해주오씨 25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사당은 후손들에 의하여 깨끗히 단장되여 있었다.

대부분의 사당이 문에 잠겨있고 사람의 손길이 많치않은데 비해 회죽리에 위치한 수양사는 잘 단장되여 있었다

회죽리는 예전에는 해주오씨들의 집성촌이였지만 지금은 집성촌개념이 많이 흐려있다.

 

 

수양사(首陽祠) 중건비에 따르면 본래 수양사(首陽祠)는 1585년(선조 18)에 세웠으며, 1988년 9월에 중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수양사(首陽祠) 중건비는 방형의 이중 대석 위에 높이 117㎝, 두께 18.5㎝, 너비 42.5㎝의 오석(烏石)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얹었다. 비문은 26세손인 오정환이 짓고, 글씨는 권영구가 썼으며, 1988년 9월 18일에 세웠다.

 

 

수양사 앞뜰에는 살살이꽃이 한창이다.

잘 정리되여 있는 사당과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살살이꽃 군락이 너무나 보기가 좋다.

 

 

 

수양사(首陽祠) 사당은 정면이 3칸이고, 측면이 1칸 반인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반 칸의 앞퇴를 두고 있다. 수양사(首陽祠) 처마 밑에는 ‘수양사(首陽祠)’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각 칸마다 이중 분합문이 달려 있으며, 통 칸 마루방으로 처리해 놓았다. 오인유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12위, 오른쪽에는 13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사당 주위에는 회와 돌을 섞은 담장을 두르고 그 위에 기와를 얹었다. 정면에는 ‘충의문(忠義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솟을삼문이 있으며, 그 바로 왼편에 수양사(首陽祠) 중건비가 세워져 있다.

수양사 사적비 또한 수양사 마당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회죽리는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회안리(會安里)의 ‘회(會)’자와 죽동(竹洞)의 ‘죽(竹)’자를 따서 회죽리(會竹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만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목리·죽동·회안리·중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회죽리라 하고

만승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1월 1일 만승면이 광혜원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광혜원면 회죽리가 되었다.


서쪽으로 무이산[462m] 줄기가 뻗어 있고, 남쪽의 이월면과 연결되는 진천평야의 북부에 자리 잡은 지역 특성상 서쪽은 구릉지, 동쪽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기후가 온난하고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