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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혜원면 실원리 당원위영당(廣惠院面 實院里 唐原尉影堂)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광혜원면 실원리 당원위영당(廣惠院面 實院里 唐原尉影堂)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9. 28. 10:10

 

당원위영당이 위치한 실원리(實院里)는 진천군의 가장 북단(北端)에 위치하며 광혜원면에 속한 곳이다.

선조의 사위인 정간공 홍우경(1590∼1625)의 영정을 모신 당원위영당이다.

실원리는 큰실원리와 작은 실원리로 나뉘는데 당원위 영당은 큰실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홍우경과 정인옹주의 묘소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하였다.

 

 

 

 

실원리(實院里)는 진천군의 가장 북단(北端)에 위치한다. 관청샘, 열두봉고개가 있다.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실리, 소실리, 경상도 안성남면을 병합하여 실원리라 했다. 자연마을로는 실원, 동주원 등이 있다. 실원은 실안이라고도 하며, 살기 좋은 곳, 편안한 곳이라 하여 실안(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실안이를 대실이라 하고 작은실안이를 소실이라고 한다. 특산물로서는 고추가 있으며, 감나무도 많다.

 

 

 

당원위영당(唐原尉影堂)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으며 둘레는 막돌로 이쁘게 담장을 만들어 둘렀다

새로 보수하여 단청이나 여러가지등이 참 보기가 좋으며 영당에서 보면 전체 마을이 보이는 것이 자리 또한 좋은곳으로 여겨진다.

 

 

 

홍우경은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부(敬夫). 은(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여겸(汝謙)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식(湜)이며, 어머니는 윤견철(尹堅鐵)의 딸이다.

1603년(선조 36) 선조의 딸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혼인하여 당원위(唐原尉)에 봉해지고 계(階)가 여러 차례 올라 봉헌대부(奉憲大夫)에 이르렀다.

성품이 검소하고 겸손하여 부마에게는 저택을 하사하는 관례가 있었는데도 이를 굳이 사양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폐모론이 일어나 245명이 정청(庭請)에 나아가 참례하였으나 이에 끼이지 않은 38명에 들었다.이이첨(李爾瞻)·한찬남(韓纘男) 등의 음모를 성토하다가 10간(奸)으로 몰려 관작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관되었으며, 수록대부(綬祿大夫)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홍우경 영정은 조선 중기의 인물인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의 30여 세 때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영정의 크기는 가로 28.4cm, 세로 56.2cm이며, 형식은 왼쪽으로 살짝 비켜 있는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이다. 얼굴은 약간 긴 형으로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적당한 살집이고, 두 눈은 정기가 어려 있다. 수염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으며, 표정은 상당히 밝고 호방하다. 관복을 입은 인물의 모습이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표현되었다. 바탕은 황색을 사용하여 차분하면서도 밝다.

화풍은 가는 선을 이용해 간결한 필체로 묘사하였으며, 관찰력이 예리하고 묘사력도 정확하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제작된 다른 전신 공신상(功臣像)들과 달리 하반신을 생략한 채 상반신만 간략하게 표현했으며, 특히 얼굴을 중점적으로 표현하였다. 영정은 일부가 훼손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홍우경은 본관이 남양(南陽)인 홍식(洪湜)의 아들로, 1590년(선조 23)에 태어났다. 1603년(선조 36)에 선조의 넷째 딸인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혼인하여 순의대부당원위(順義大夫唐原尉)에 봉해졌으며, 후에 봉헌대부(奉憲大夫)가 되었다. 1618년(광해군 10)에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이첨 등의 음모를 상소했다가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복권되었으며, 1625년(인조 3)에 36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홍우경 영정은 인물의 풍모와 기품이 잘 나타나 있으며, 전체적으로 화법이 뛰어난 초본으로 보인다. 동양 초상화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영정 제작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회화 작품으로 평가된다.

2004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되었다. 영정은 후손인 홍범석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정인옹주는 언제 태어났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조선의 제14대 왕인 선조(宣祖)와 그 후궁 정빈민씨(靜嬪 閔氏)의 장녀로 태어났다.

성은 이(李),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정인옹주의 생모 정빈 민씨는 여흥 민씨 민사준(閔士俊)의 딸로,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종2품 숙의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민씨는 남편 선조와의 사이에서 정인옹주를 비롯한 2남 3녀를 낳았다

정인옹주는 1603년(선조 36년) 이조참판을 지낸 남양 홍씨 홍식(洪湜)의 아들 홍우경(洪友敬)과 혼인하였다. 이때 홍우경은 당원위(唐原尉)에 봉해졌다. 이후 정인옹주는 1656년(효종 7년) 음력 1월 10일 사망하였다 정인옹주는 사후에도 3년간 녹봉을 그대로 지급받았다.

묘소는 당원위 홍우경과 함께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으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 78호로 지정 관리되고있다

 

 

 

[당원위 영당에서  보이는 당원위 홍우경과 정인옹주의 묘소]

 

 

 

 

 

 

 

참고문헌-한국중앙학연구원,향토디지털문화대전,네이버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