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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척면 송강리 우천석묘소(山尺面 松江里 禹天錫墓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산척면 송강리 우천석묘소(山尺面 松江里 禹天錫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7. 7. 13:10

 

조선시대 조성된 묘소로 정확한 조성연대는 미상이나 우천석이 1280년(충렬왕 6)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충주에 장지를 정한 이래 후손들의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다. 묘표는 1919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천석 묘소는 약160㎡정도의 방형분으로 4~5단 쌓아 호석을 두르고 있으며 호석(護石)의 높이는 90㎝이다. 방형의 전면은 263㎝, 측면은 550㎝이고 상석과 문인석이 있으며 좌측으로는 구묘표가 있으며 문인석은 비교적 정교한 솜씨로 조성되었으며 특히 양쪽 문인석의 모습이 이채롭다.

 

 

 

우천석 묘표의 정면에는 高麗侍中丹陽禹公諱天錫之墓라 하였고, 좌측면에는 歲己未十一月朔朝十七世孫導河元相十八世引河二十世孫泰鼎立라고 새겼다.

 

 

우천석 [禹天錫]은 고려의 무신으로 본관은 단양()이다. 1266년(원종 7) 병인시()에 급제하였다. 1268년(원종 9)에 도병마녹사()로 임명되어 낭장() 박신보()와 함께 남송()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몽고의 왕국창() 일행을 흑산도로 인도하여 뱃길을 살피게 하였다.

1273년에는 서해도 안찰사(西使)로 있으면서 제주를 거점으로 삼아 저항하는 삼별초()를 공격하였으나 전함()을 파선하였다는 이유로 다루가치 이익()의 문책을 받아 투옥되었다. 출옥한 후 1277년(충렬왕 3) 전라도안렴부사(使)와 잡단()을 거쳐 문하시중()을 지냈다.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 묘소가 있으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