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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동 양정공부조묘(金陵洞 襄靖公不祧廟 )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금릉동 양정공부조묘(金陵洞 襄靖公不祧廟 )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0. 27. 22:46

 

양정공 사우는 충주시 금릉동 능암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사당이다.
조선시대에는 가문의식의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사당을 건립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양정공 사우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된다.


 

조선 중기 안동권씨 후손들이 조선 세조 때의 무신인 양정공 만휴당(晩休堂) 권언을 추숭하기 위해 그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고자 건립하였다. 양정공 권언은 1453년 무과에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 해의 계유정난 때 공을 세워 정난공신 3등 복성군으로 봉해진 바 있다.

이후 1930년대에 이르러 현 위치에 다시 중건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5량집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단청이 되어 있다.

서쪽으로 배치하면서 전면에는 반 칸씩의 전퇴를 만들었다. 사당 입구에는 솟을삼문이 있다.
안동권씨 종중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권언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린다.


 


 

 

권언(權 )은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이다.


본관은 안동(安洞). 증조부는 의정부 찬성사 권근(權近)이며, 조부는 우군동지총제 권천(權踐)이다. 아버지는 영춘현감 권첨(權瞻)이며, 어머니는 강릉유씨이다.


어려서부터 무예에 능하여 ‘무동(武童)’이란 별칭을 얻었으며 1453년(단종 1) 4월에 단종이 모화관에서 베푼 무과 시험에서 약관의 나이로 장원 급제하였다. 같은 해 10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자신의 집권에 장애가 되는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을 일으켰을 때 권경, 한서구, 한명진 등과 함께 수양대군을 도와 공을 세워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 3등에 녹훈되고 복성군(福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봉정대부행사복시정이 되어 전지 백결, 노비 7구, 백은 10량을 하사받았다.

1455년 단종 복위 운동인 사육신사건이 일어나자 그 당여들 검거에 앞장선 공으로 세종의 아들인 영풍군(永豊君) 이전(瑔)의 저택과 하위지(河緯地)의 처 귀금(貴金)과 여식 목금(木今)을 노비로 하사받았다. 1456년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1459년 공조참의, 1460년 충청도처치사가 되었다. 1463년(세조 9) 명나라 황태후가 죽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서 호조참판 정자제와 함께 진위겸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7년(세조 13) 11월 30일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에 있으며, 충주시 금릉동 능바우에는 부조묘가 있다.


 

 

졸기에 “복성군(福城君) 권언이 졸하였는데, 무략(武略)이 있었고, 말이 적으면서 웃는 자였다. 무과에 제1등으로 합격하였고, 이름이 정난공신에 올랐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으로 졸하니, 조회를 1일 동안 정지하였다. 시호를 양정(襄靖)이라 하였는데, 일로 인하여 공(功)이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하고, 자기를 공경히 하여 말이 적은 것을 ‘정(靖)’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며,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 3등에 녹훈되고 복성군에 봉해졌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부조묘는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이다.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가 된다. 따라서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부조묘는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부조묘가 등장한 것은 고려 중엽 이후 사당을 짓게 되면서부터이다.

불천위가 된 신주는 처음에 묘 밑에 설치할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종가 근처에 사당을 지어둘 수 있게 됨으로써 부조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부조묘는 본래 국가의 공인절차를 받아야 하나 후대로 오면서 지방 유림의 공의에 의해서도 정해졌다.

부조묘 [不祧廟]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조묘 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자리를 지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