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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동 병마우후 이유성 영세불망마애비(龍亭洞 兵馬虞候 李儒成 永世不忘磨崖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용정동 병마우후 이유성 영세불망마애비(龍亭洞 兵馬虞候 李儒成 永世不忘磨崖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1. 25. 06:46

 

상봉재 마애비군 2지역(田文顯,李光沂)을 지나 길을 재촉하면 왼쪽암벽에 새겨진 3기의 마애비를 만난다.이곳을 마애비 3지역 이라한다.

이유성(李儒成)의 마애영세불망비(磨崖永世不忘碑)는 세기의 마애비를 바라보며 가장 좌측에 자리한 비석이다.

비석의 상태는 글씨등이 인위적으로 파손되여 있으나 자세히 보면 글씨를 판독할수가 있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등에 적혀진 오기는 바로 잡아야 할것 같다.많은 사람들이 보고 또는 참고문헌으로 사용하는 청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에 오기(誤記)가 많아 많은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우(憂)를 바로 잡아야 할것 같다. 마애비를 설명하는 입간판도 바뀌어 있으며 안내또한 잘못 설명 되어있습니다

 

비석을 바라보며 왼쪽에 자리한 마애비가 이유성의 마애비입니다.비갓을 조각하여 만든 특이한 작례입니다.

 

 

 

 

兵馬虞候李公儒成永世不忘(병마우후이공유성영세불망)충청병마우후 이유성을 긴 세대동안 잊지 않는다는 뜻의 마애비이다.

마애비의 조성시기는 壬辰 八月 日(임진 팔월 일)1772년 음력 8월에 새겼다.

 

승정원일기에는 이유성에 대한 언급이 기술되여 있다.

영조44년 2월3일 건륭청고종33년인 1768년 이유성을 (李儒成爲忠淸兵虞候)충청병우후에 제수한다.

 

有政。吏批, 參判閔百興進, 承旨具壽國進。吏批啓曰, 判書洪樂性式暇, 參議未差, 小臣獨政未安, 何以爲之? 敢稟。傳曰, 仍爲之。以南泰會爲大司憲, 任㻐爲大司諫, 李迪輔爲執義, 李堉爲司諫, 朴取源爲掌令, 崔夢嵒爲掌令, 洪秀輔·李鎭復爲持平, 洪景顔爲獻納, 申光緝·安聖彬爲正言, 尹蓍東爲副提學, 徐浩修爲副校理, 趙暾爲刑曹判書, 金鍾正爲禮曹參判, 洪梓爲兵曹參議, 李彦衡爲工曹參議, 洪相簡爲奉敎, 李克生爲待敎, 朴弼逵爲左通禮, 南胄寬·洪九瑞爲兵曹正郞, 愼認明爲佐郞, 尹正烈爲吏曹佐郞, 李顯永爲說書, 具昌逵爲司饔主簿, 尹勉遠爲濟用主簿, 尹象厚爲高陽郡守, 洪致績爲鎭川縣監, 蔡緯夏爲開城經歷, 朴鸞源爲陽智縣監, 鄭亨復爲知經筵, 車升鎭爲禮曹正郞, 黃樟爲翼陵別檢, 李熙福爲學諭, 兵曹正郞林德躋仍任事承傳。兵批, 判書李景祜進, 承旨具壽國進。兵批啓曰, 知訓鍊, 今當差出, 而當品中無可擬之人, 從二品備擬, 何如? 傳曰, 允。以申㬚·柳爾胄爲五衛將, 安杓爲曹司衛將, 李軾爲中樞經歷, 金獜瑞爲全州營將, 金尙孝爲翊衛, 韓用和爲洗馬, 趙心泰·吳載光爲宣傳官, 金德厚爲上土僉使, 徐世雲爲安義僉使, 張起允爲柔遠僉使, 李儒成爲忠淸兵虞候, 廉重曄爲在德萬戶, 金晚大爲景福將, 趙大謙爲昌慶將, 恩彦君裀爲都摠官, 鄭汝稷爲知訓鍊。同知單崔昌基, 僉知二單朴思儉·金相台, 副護軍具明遠·李道燮·郭聖濟, 副司直李昌壽·蔡濟恭·沈履之·李瀰·趙榮順·李之晦·金光默, 副司果閔光洙·李延弼·金聖休

 

 

 

 

마애비위에 지붕모양의 비갓을 만든것도 비석에서의 특이한 작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