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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면 행촌리 이방안용우시혜노령영세불망비(延豊面 杏村里 吏房安用禹施惠奴令永世不忘碑) 본문
연풍면 행촌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방 안용우의 시혜비이다.
행촌리 연풍향교옆에 위치하고 있는 비석들은 연풍면 각지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한군데로 모아 놓은곳이다
이 고장을 거쳐간 군수나 현감 또는 면장등의 비석이 같이 함께 하고 있다.
비석에는 이방안용우시혜노령영세불망비(吏房安用禹施惠奴令永世不忘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비의 건립시기는 기해(己亥)3월이다.
비의 상태등을 보아 비석에 표기된 기해년은 1899년정도로 추정된다.
비석에 음각되여 있는 노령(奴令)이라 함은 지방관아의 관노와 사령을 칭하는 말로 이방 안용우가 관노와 사령등에게 은혜를 준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으로 추측된다.
비석에서 칭하는 이방은 비석의 내용으로 보아 중앙관청의 이방을 칭하는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이방(吏房)은 조선시대 승정원 소속의 이전(吏典) 담당 관서이다
문관의 인사·서훈·고과(考課) 관계 사무의 출납을 맡았다. 그 담당 승지[色承旨]는 도승지로서 정3품 당상관이었다.
승정원은 육조(六曹)의 체제에 맞추어 6방으로 편성되었는데, 이방은 이조 및 그 속아문(屬衙門 : 소속된 하급관서)인 종친부(宗親府)·의정부·의빈부(儀賓府)·충훈부(忠勳府)·돈녕부(敦寧府)·사헌부·사간원·사옹원(司饔院)·상서원(尙瑞院)·내수사(內需司)·내시부(內侍府)에 관계된 업무를 담당하였다.
도승지는 이방승지였을 뿐만 아니라 승정원의 장관으로서 전체업무를 총괄하기도 하였다. 각방 승지의 보직을 지명하는 명단을 왕이 직접 작성하였는데 이를 방단자(房單子)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승정원 외에 지방의 주·부·군·현 등의 각 관청에도 육방이 있었다. 그 중 이방은 지방관아에서 인사관계의 실무를 담당한 책임 향리였다.
지방관아의 행정업무도 중앙부서처럼 6방체제로 구성했기 때문에 이방은 향리의 인사·고과 등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이방은 또한 지방 아전의 대표자로서 수리(首吏)라 불렀으며, 호방(戶房)·형방(刑房)과 함께 삼공형(三公兄)으로 통칭되었다.
즉 이방은 지방행정의 실권을 장악한 관직이었다.
특히 지방행정은 전적으로 수령의 책임 아래 있었으나, 수령은 실무에 어두웠기 때문에 이방의 농간은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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