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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면 수회리 정희하선정비(水安堡面 水回里 鄭羲河善政碑) 본문
수안보면 수회리 다기능회관앞 도로가에 있는 조선후기의 문신인 정희하의 선정비이다.
비석의 전면에는 현감정후희하청덕선정비(縣監鄭侯羲河淸德善政碑)라고 음기되여 있다.비석은 일체형이며 대석은 후보하였다.
수회리(水回里)는 전해 오는 마을 이름이 무두리라고 하는 것은 고운천이 동북간으로부터 마을 앞으로 흐르고 서쪽으로는 석문천이 마을을 싸고 돌아 ‘마을 주위에 물이 돈다’하여 ‘물돌이’, ‘무두리’라고 불러왔고 한자로 수회리(水回里)라 한다.
본래 연풍군 수회면 주막동(酒幕洞)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무두리, 원통, 새터를 합쳐 수회리라 하여 괴산군 상모면에 편입되었다. 1937년 법정리동을 자연마을 별로 분구(分區)시켰으나 새터와 원통으로 합쳐진 상태로 두었다. 합쳐진 마을 이름은 신대(新垈)[새터]의 신과 원통(元通)의 원을 따서 신원(新元)이라 불렀다. 그 후 다시 분구되어 독립 자연마을이 될 때 원통은 제 이름을 찾아가고 신원은 그대로 두었다. 1963년에 수회리는 중원군으로 편입되었다. 1720년(숙종 46) 관곡을 보관하기 위하여 이곳에 북창(北倉)을 설치하였는데 그 규모는 북고(北庫) 12간, 서고(西庫) 6간이었다. 지금도 이 터를 창뒤라고 부른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정희하는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서(聖瑞), 호는 취석당(醉石堂). 송강 정철(鄭澈)의 6세손으로 영의정을 지낸 문경공 정호(鄭澔)와 강릉최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681년(숙종 7) 충주에서 태어난 정희하(鄭羲河)는 1715년(숙종 41) 한성부판관이 된 이후 외직으로 나아가 평안도사, 연풍현감 등을 지냈다. 1747년(영조 23) 6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저술 및 작품으로는 문집 6권이 전한다. 묘소는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 흑성골에 있다.
[불정면 지장리 흑성골에 있는 정희하의 묘이다]
연풍현감으로 부임해 선정을 펼쳐 1738년(영조 14) 9월 선정비가 건립되었다. 땅에 묻혀 있던 것을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발견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돌방머리에 세워 놓았다가 2005년 수안보면 수회리 수회경로당 앞 도로옆으로 옮겨 놓았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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