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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후미리 풍덕군수 안경열묘지(蘇伊面 厚美里 豊德郡守 安璟烈墓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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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후미리 풍덕군수 안경열묘지(蘇伊面 厚美里 豊德郡守 安璟烈墓地)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8. 11. 14:20

 

소이면 후미리 탑상골에 있는 순흥인 풍덕군수 안경렬의 묘입니다.

이 곳에 후미리 석탑이 있는 관계로 이 일대가 절터인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연유에서인가는 알수가 없지만 후미리 사지에 묘를 쓴것 같습니다.

후미리사지는 후미리 동촌 마을 북쪽 골짜기의 탑상골에 있는 절터로, 현재는 과수원으로 이용되는 곳입니다.

절터의 사찰에 대한 창건 유래에 관한 고문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와 《전국유적목록》에 의하면 이곳 주변 기와편이 많이 분포하고 도괴된 석탑 하부 2층이 존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사지의 사찰은 조선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 말기에 풍덕군수를 지낸 안()모씨가 묘를 쓰기 위해 폐사하였으며, 부근에 석조여래입상이 있었다고 한다.

 

 

 

석물등은 후대에 자손들에 의하여 새로 조성된것들 입니다.

묘비석의 전면에는 통정대부행풍덕군수순흥안공휘경렬지묘(通政大夫行豊德郡守順興安公諱璟烈之墓)라고 음기되여 있습니다.

 

 

 

 

 

안경렬은 조선후기에 충주지역에 낙향한 문신으로서  본관은 순흥(). 자는 경옥()이요, 호는 하산()이다. 참봉 안택범()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파주목사 안성연()이며, 아버지는 통덕랑 안정교()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 이재관()이며, 생부는 중추원의관 안정료()이고 생모는 창영성씨() 성덕입()이다.

안경열은 28세에 교수(, 종9품)에서 1903년 향단의 추천으로 군부주사()가 되었다가 1906년 풍덕군수에 제수되었으며, 1907년 통정대부가 되었다. 일본에 협력하지 않고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로 낙향하여 1926년(병인)에 도통사()를 세워 공자, 주자, 안향, 6군자 등 12위패를 모셨다. 1942년 4월 14일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에 관련하여 기록한 『소수추월록』을 집필하였으며, 고려 말 문신인 근재() 안축()[1287~1348]의 일대기와 문집을 총 정리한 『근제선생문집()』 세 권을 편찬하였다.

 

 

 

 

 

안경렬은 고종 황제로부터 1906년에는 풍덕군수, 1907년에는 6품에서 정3품의 통정대부로 칙 령을 받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칙령 풍덕군수 안경렬 임 경리원기사 서주임관사등자 광무십년십이월십일일(勅令 豊德郡守 安璟烈 任經理院技師敍奏 任官四等者 光武十年十二月十一日) 칙령 육품승훈랑안경렬 승정삼품통정대부자 광무십일년사월십칠일(勅令 六品承訓 郞安璟烈 陞正三品通政大夫者 光武十一年四月十七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