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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면 평촌리 이기윤망북비(東二面 坪村里 李箕允望北碑) 본문
1919년 고종황제의 승하를 통탄하며 슬픔을 표현했던 망북비(望北碑). 이 망북비는 평촌마을에서 평촌을 이루었던 성주이씨 문중의 이기왕공이 세운 것으로 고종이 승하함에 따른 비통한 마음을 적고 있어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게 해주고 있다.
이기왕공은 현재 평촌리에 거주하고 있는 이교균의 방계 할아버지로 이씨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이 비가 세워져 일부 주민들에 의해 비석의 갓이 벗겨지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 이미 세상을 떠난 당숙 이석영씨와 함께 갓을 다시 씌어놓는 등 비석을 관리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 망북비가 세워진 평촌 뒷산은 동이면 인근에서는 용죽리 대밭말 뒷산과 함께 옛부터 국상을 당할 때마다 유림은 물론 주민들이 북향 재배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이 북향재배하던 곳이라는 사실은 용죽리 정수병의 증언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데 망북비의 앞면에는 太皇帝崩日月無光이라 하여 국상을 당한 슬픔을 나타내고 있으며 뒷면에는 "개국 5백29년에 세웠다"라는 사실을 밝혀 설립연대가 1921년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 비석은 지방 유생인 이기윤(성주이씨)선생이 1919년 고종황제의 승하를 통탄하여 1921년 이곳에 세운 비이다. 비문에는 “고종이 돌아가시니 해와 달이 빛을 잃었구나”, “ 온 국민이 상을 당하니 마치 어버이를 잃은 듯 망극하도다”라는 뜻의 비통함이 새겨져 있어 당시의 안타까운 시대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로부터 국상을 당하면 지방유림들과 주민들이 이곳에서 북향제배하던 곳이라고 하며, 이비가 갖는 의미는 일제에 의하여 국왕을 잃은 민족으로 자존의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대정4년(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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