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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면 잠병리 충흥사(金加面 岑屛里 忠興祠)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금가면 잠병리 충흥사(金加面 岑屛里 忠興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0. 4. 10:15

 

 

 

 

금가면 축동마을에 있는 순흥안씨의 사당인 충흥사입니다.

기존에 금병에 있던 사당이 쇠락하자 다시 신축한듯 합니다.금병에는 지금도 쇠락한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축동리 마을자랑비뒤로 언덕에 2013년 10월에 신축한 충흥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잠병리(岑屛里)는 본래 충주군 가차산면 지역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하여 명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잠리, 사천리, 사랑리, 하담리와 상잠리 일부를 병합하여 잠병리가 되었다. 법정리인 잠병리는 3개의 행정동(축동·금병·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순흥안씨 잠병리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축동(일명 싸리골)과 금병이다.

잠병리가 공식 행정구역 명칭이 된 것은 1914년부터지만 잠병리란 이름은 이미 예전부터 사용되던 이름이었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잠병리는 관문에서 북쪽 20리에 있고, 82호에 남자 205명, 여자 330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보다 20년 뒤인 1780년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충주목 가차산면조」는 잠병리는 관문에서 북쪽 20리에 있고, 89호에 남자 266명, 여자 170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870년에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충주목 방리조」에도 잠병리는 관문에서 북쪽 20리에 있고 269호에 남자 394명, 여자 422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충흥사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적어놓은 충흥사의 내력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기 1598년 (선조31년)에 축동 순흥안씨 파조이신 17세(경창)께서 경기도 양주땅에서 이 곳 축동촌으로 이거하여 손을 퍼뜨리고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으니 산소의 실전으로 서기 1895년 경부터 조그마한 초가에 사당을 마련 매년(음)10월 8일에 시제를 지내던중 서기 1943년에 후손들의 뜻을 모아 축동마을에 새로 사당을 중건설 충흥사라 칭하여 오던중 장소가 협소하고 진입로가 부실하여 사당의 노후로 보수에 어려움이 많아 여러종친들이 뜻을 모아 이곳으로 이전 중건하였으며 이 곳에 새로 함께 모시게 된 11세좌랑공(홍문)12세(희)는 산소의 실전으로 경북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 계곡산에서 제단을 설립 매년 10월에 시향을 모셔왔으나 운영상의 어려움이 많아 전국 각종원과 이 곳 종친들의 뜻을 합쳐 이곳에 함께 모시게 되였습니다.협조해 주신 종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서기 2013년 10월 충흥사건립추진위원장 종회장 안문기.

 

충흥사건립헌성비(獻誠碑)라하여 순흥안씨좌랑공 18세손인 부산 삼화상사 대표이사 안경오의 헌성비기 자리하고 있다.

또한 충흥사옆으로 관리동이 한동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립헌금비와 충흥사 건립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