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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삼방리 양천룡충효문(靑山面 三方里 梁天龍忠孝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산면 삼방리 양천룡충효문(靑山面 三方里 梁天龍忠孝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1. 8. 10:28

 

 

 

 

청산면 예곡리를 지나 직진을 하다보면 삼방리 삼거리를 만난다. 삼방리 삼거리에서 계속 직진을 하다보면 사가목으로 가다보면 좌측 야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쉽게 지나치기 쉬우니 잘 보아야 한다. 대나무숲과 나무들에게 가려 녹음이 짙을때는 쉽게 지나치기가 쉽다.

 

 

 

 

양천룡은 남원인으로서 고려말의 문신이다.호는 운암(雲庵)이다.할아버지는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양준(梁俊)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 양우(梁祐)이다. 고려 공양왕(恭讓王)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대방군(帶方君)에 봉(封)해졌다. 그러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벼슬을 그만두고 남원에 은거(隱居)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가 등극한 이후 집현전 대제학벼슬로 세번이나 청하였지만 그러나 충신은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며 병을 핑계로 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의 출입을 금하였다고 한다. 평소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히여 1396년 아버지 양우의 상을 당하자 주자가례(朱子家禮 )에 따라 3년간 아바지 무덤옆에 움막을 짓고 3년상을 치뤘다. 연이어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아버지때와 마찬가지로 3년간 시묘하였다. 양천룡의 효행의 사실이 알려지며 칭송이 자자하니 이에 1442년(세종24년)충효로 정려(旌閭)되여 충효문(忠孝門)이 세워졌다.

 

 

 

정려비에는 충효문하시중봉대방군남원양공운암천룡지려(忠孝門下侍中封帶方君南原梁公雲庵天龍之閭)라고 각자되여있다. 충효문은 원래 남원에 세워졌으나 1928년 철로공사로 인하여 철거되였다. 1955년 도로개설공사로 다시 철거하게 되자 남원양씨 문중에서 현재의 위치인 청산면 가사목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삼방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마을이 삼거리(三巨里)가 되어 명티리 달박골을 거쳐 상주군 화동면으로 이르는 명티고갯길, 북으로 법화리 숫골에서 보은군 마로면 갈전리로 넘는 백자미티와 장누골의 별티(별재)를 거쳐 상주군 모서면에 이르는 고갯길 등이 있어 삼방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장누골(장녹골), 가사목, 안가사목 등이 있다. 구룡농주(九龍弄珠)는 가삼리(佳三里, 가사목) 북쪽에 있는 산으로 아홉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으로 명당이다.